신사업 원하는 대기업들, PEF와 연합 사례 이어져
경영권 거래 절벽…PEF도 안정적 대기업 거래 선호
크레딧펀드 설립 잇따라…외국 PEF 환율 덕 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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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들어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사태 등 악재로 출렁였고 국내에선 정권 교체가 맞물렸다. 통제하기 어려운 외생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대기업과 사모펀드(PEF)의 관계는 더 돈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 사이에서 신산업 투자에 나서야 하는 대기업으로선 PEF 자금을 활용해 당장의 재무구조 악화를 피할 수 있다. PEF 입장에서도 대기업과 손잡으면 최소한의 투자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올해 세계 경제는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중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구간에 경기 하강, 인플레이션 우려가 얹어졌다. 최근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발생하며 경기 불안, 물가 상승이 가속화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대통령 선거가 정권 교체로 결론났다. ‘예측 가능성’이 커졌다며 반색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있는데, 경제 정책의 큰 틀이 기존과 달라질 가능성도 커졌다.
대기업들은 쏟아지는 악재와 변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까 살피는 상황이다. 러시아 사태 이후 공급망 영향을 점검하는가 하면 유동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고심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만큼 기업들은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 조달을 앞당기려는 모습이다.
대기업들은 당장 살림도 중요하지만 신사업 확장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지금 불확실성이 크다고 상황만 관망해서는 급변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자금 조달처를 다변화해야 하는데 PEF도 유력한 파트너다.
대기업과 PEF의 협력 관계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국민연금의 코퍼레이트 파트너십 펀드(코파펀드)가 있고, 그 후에도 기업들은 PEF로부터 투자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PEF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대기업이 수혈받을 수 있는 자금의 규모도 점차 커졌다. 웬만한 대기업은 물론 카카오와 같은 신흥 기업들도 PEF와 손을 잡는 사례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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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대기업과 PEF 간 거래가 더 분주하게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더블유컨셉은 최근 IMM크레딧솔루션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건설사에서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SK에코플랜트는 전방위적으로 PEF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GS그룹의 휴젤 투자에 IMM인베스트먼트가 우군으로 나섰고, 한화솔루션의 중국법인 소수지분은 헤임달PE가 받기로 했다.
이 외에 SK온은 설비 증설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벌 PEF와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계획이다. KT도 분사한 클라우드 및 IDC 사업을 활용해 PEF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것으로 보인다. PEF와 관계가 뜸했던 롯데그룹는 일부 계열사가 PEF를 접촉해 성장 자금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입장에선 자체 자금으로 신사업을 키우면 좋겠지만 자금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 금융권에서 차입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엔 재무구조 악화, 신용등급 하락 등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급할 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지금처럼 변수가 많을 시기에는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어려운 수다. 대신 우선주나 신종자본증권 등을 발행하면 재무구조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한 PEF 관계자는 “PEF는 기업의 소수지분에 투자할 때 은행 대출 수준으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보장수익률을 크게 높일 수 없다”며 “물론 대출보다는 수익률이 높겠지만 대부분 고정금리기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는 기업들이 PEF 자금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산업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대형 PEF와 손을 잡으면 시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명망있는 글로벌 PEF로부터 자금을 받아 신산업에 투자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짜면 외생 변수로 인한 주가 하락을 막는 데 움이 된다. 실무자 입장에선 은행이나 채권시장보다 더 은밀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PEF를 접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PEF 역시 대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 나쁘지 않다. 지금처럼 대내외 변수로 투자 전략을 짜기 어려울 때는 공격적으로 ‘경영권 투자’에 나서기 쉽지 않다. 저점 투자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실패한 투자로 장기간 애를 먹을 수 있어서다.
PEF가 대기업이 내놓는 사업부나 소수지분, 신주 등에 투자하면 경영권 거래처럼 몇 배의 투자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자금줄인 출자자(LP)의 이해관계와도 부합한다. 국내 LP들은 큰 수익보다는 손실을 나지 않는 것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최근 대내외 변수로 기업가치가 급등락하며 경영권 거래 기회 자체가 줄어든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PEF 운용사들이 IMM크레딧솔루션, VIG얼터너티브크레딧, 글랜우드크레딧 등 새로운 수단을 적극 만들고 있다. 최근 진행된 일부 거래는 PEF가 일찌감치 검토하다가 크레딧 펀드를 만든 후에야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PEF 출자 기관은 “최근 PEF 시장에 경영권 거래가 뜸해지며 그로스캐피탈 등 앞선 단계 투자를 늘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경기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도 PEF 시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환율은 국내에서 원화로 투자하는 국내 PEF에는 큰 변수가 아니지만, 해외에서 자금을 집행하는 글로벌 PEF들은 민감하다. 원·달러 환율의 경우 올해 한때 1250원에 육박할 만큼 출렁임이 심했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 자금을 굴리는 PEF는 적은 금액을 들여 한국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SK온 투자유치도 미국계 PEF에 유리해진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간다면 국내보다는 글로벌 PEF의 투자 기회가 늘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