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터...'채용비리 혐의 무죄'로 탄력
수탁위 위원장ㆍ위원 2명 바뀌어...금감원장 교체도 영향
'공정성ㆍ일관성 없다' 비판은 계속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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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무사히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주총 직전까지만 해도 주주 과반 찬성이 불투명할 정도로 살얼음판이었다는 후문이다. 캐스팅 보터(결정적 투표자)는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 역시 반대할 거란 전망이 강했지만, 24일 열린 24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에선 이사 선임 안건에 전부 찬성이라는 '깜짝 결론'을 냈다. 인사청탁 무죄ㆍ수탁위 위원 변경 등 변수가 작용했다는 평가지만, 공정성ㆍ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함영주 회장은 25일 열린 하나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2년 임기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전체 주식 수의 80.4% 참석에 과반수가 찬성했는데, 반대표 수량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지분 절반 가량과 국내 대형 기관들이 대부분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9.2%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찬성한 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2019년 이후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방침에 의거, 보수적인 의결권 행사 기조를 이어왔다. 함 회장이 파생결합펀드(DLF)와 채용비리 관련 법적 리스크를 완전히 벗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찬성표는 의외의 결과로 금융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탁위 역시 이를 두고 상당 시간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탁위는 9명의 위원이 다수결로 안건을 결정하는데, 5대 4의 팽팽한 표결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우선 함 회장의 법적 리스크와 관련, 이달 초 채용비리 관련 재판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주총을 앞둔 2020년 1월 1심에서 유죄(징역 6개월 집행유예, 이후 2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함 회장의 경우 재판부가 '10년 이상 이어진 채용 경향성에 함 당시 행장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채용비리를 함 회장이 지시했다고 확정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DLF 유죄의 경우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완전히 같은 이슈이지만, 각 재판부의 해석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 이슈였다. 내부통제 운영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금융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11조의 별표2'가 법정사항인지, 이외 사항인지를 두고 판례가 엇갈린 것이다. 손태승 1심 재판부는 이외 사항으로, 함영주 1심 재판부는 법정사항으로 판단했다.
법적 해석에 다른 관점이 있고 같은 이슈에서 다른 사례는 무죄를 받은 상황이라, 수탁위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회장 선임에 잇따라 반대표를 행사한 2020년 3월과 비교해 수탁위의 구성이 달라졌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수탁위가 국민연금 의결권 방향을 결정하게 된 건 2020년 2월의 일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지침을 변경하고, 투자정책ㆍ수탁자책임ㆍ위험관리 및 성과보상 관련 전문위원회를 새로 구성했다.
2020년 3월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회장 및 사외이사 선임에 잇따라 반대표를 던진 건 당시 구성된 '1기 수탁위'였다. 1기 수탁위는 상근전문위원 3명과 외부전문가 6명으로 구성됐는데, 근로자 대표 3인과 지역가입자 대표 3인이 ESG 정책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기 수탁위의 위원장도 근로자 대표인 원종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한국노총 추천)이 맡았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2월 2기 수탁위가 출범했다. 사용자 대표로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 대신 권재열 경희대 교수가, 지역가입자 대표로 홍순탁 참여연대 회계사 대신 이상민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가 합류했다. 수탁위 위원장도 지역가입자 대표인 신왕건 FA금융스쿨원장(한국공인회계사회 추천)이 맡게 됐다.
그간 수탁위는 ESG 관련 안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대표와 근로자 대표가 대립하고, 지역가입자 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쥐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찬성 결정 역시 이런 구도에서 논의를 거쳐 나왔을 거란 게 금융권의 평가다.
금융당국의 규제 정책 기조가 바뀐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8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재임한 윤석헌 전 감독원장은 강경한 감독 정책을 펼쳤다. 금융사고를 최고경영자(CEO) 관리 부실로 연결해 행장ㆍ사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한 건 윤 원장 때가 처음이었다.
이런 강경한 감독 정책은 많은 논란을 빚었다. 금융위원회도 일부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윤 원장 시절 중징계를 받은 일부 증권사 CEO의 징계가 2년이 넘도록 금융위원회에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는 사법부의 판단을 검토한 뒤 징계를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장의 경우 금감원장 전결로 징계가 확정되기 때문에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이후 취임한 정은보 금감원장은 관료 출신으로, 윤 전 원장보다 합리적인 감독 정책을 펼친다는 평이 많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금감원의 중징계 권한을 금융위원회로 이관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중징계'의 무게가 이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 수탁위 역시 이런 기류를 참고했을 거란 해석이다.
이번 결정으로 수탁위가 공정성ㆍ일관성에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만 해도 수탁위는 DLF 및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 감독 의무를 소홀히했다며 하나금융 사외이사 전원에 대한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회장 임기가 남아있던 김정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도 감독의무를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을 정도다. 당시 수탁위가 반대했던 사외이사 중 절반 이상이 이번 주총에서 연임에 나섰지만, 수탁위는 모두 찬성하기로 했다.
반면 신한금융 사외이사 5명, 우리금융 사외이사 3명의 연임에 대해서는 이전과 같이 '감독의무 소홀'로 반대 의견을 냈다. 조용병 회장이 채용비리 관련 지난해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만큼, 같은 잣대를 적용했다면 조용병 회장 연임을 결정한 사외이사들에게 올해엔 찬성표를 던지는 게 합리적이었을 거란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캐스팅보터인 국민연금에 필사적으로 입장을 설명한 것 같다"며 "2기 수탁위 역시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 공백이 생기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