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지주, 바이오·헬스케어 투자 나서…"기업가치 제고"
지주는 방향 정리, 실제 투자 및 조달 계열사 역할 커질 듯
'캐시카우' 존재감 줄어든 롯데쇼핑은 내부 정리가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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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롯데그룹이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바이오와 헬스케어사업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롯데지주를 포함해 전 계열사가 적극적인 투자와 조달에 나서며 외형 확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룹의 주축인 롯데쇼핑은 비교적 잠잠한 분위기다. 가장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계열사이기도 하지만 ‘신사업’보다는 롯데온 통합, 비용 관리 등 ‘내부 정리’가 우선인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롯데의 100억원 이상의 M&A(인수합병)또는 투자 건수는 12건에 이르며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전 계열사의 투자 움직임이 빨라지면서다. 올해 롯데렌탈은 차량 공유 업체 쏘카에 1832억원을 들여 지분 13.9%를 취득했고, 롯데케미칼은 올해 1월 650억원을 들여 바나듐이온 배터리 제조업체인 ‘스탠다드에너지’의 지분 15%를 확보했다.
그룹 차원의 프로젝트 계획도 나오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은 ‘실버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는데, 신동빈 회장이 전 계열사에 실버케어 산업 육성 총동원령을 내렸다.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영등포공장을 미국 뉴욕의 '첼시마켓'과 같은 쇼핑몰로 개발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그룹 차원의 쇄신 움직임이 불면서 지주도 분주해졌다. 1월에는 지주가 나서 한국미니스톱을 3134억원에 인수했다. 롯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를 연결 자회사로 편입했고 롯데케미칼의 지분도 늘렸다. 직접 그룹의 미래 먹거리 찾기도 나섰다. 롯데지주는 지난달 25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래사업 전략을 공개했다. 이동우 대표이사는 바이오, 헬스케어를 롯데의 신성장 동력이라고 공식화하며 “롯데지주가 직접 투자하고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롯데지주는 지난달 700억원을 출자해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고 이달 1일, 대표로 이훈기 롯데지주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 부사장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1995년 신동빈 회장과 함께 롯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조정실에서 신 회장 측근으로 전략 기획 수립 등 핵심 역할을 맡아 온 인물이다. 2020년 8월부터는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을 맡고 있다. ESG경영혁신실의 신성장2팀(바이오)과 3팀(헬스케어)에서 각각의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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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계열사들이 ‘뉴롯데’ 준비에 분주한 가운데 그룹 내 계열사의 각자도생 분위기가 짙어졌다는 평이다. 시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롯데그룹 내 '콘트롤타워’가 모호하고 각 계열사의 CEO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공통된 평이 나온 바 있다. 지주 소유 부동산 자산이 아니지만 롯데리츠 상장 건도 지주 측에서 주도를 했듯이, 향후 일부 프로젝트들도 움직임도 계열사의 방향성을 잡는 차원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롯데지주가 이끄는 신사업 투자도 큰 건들은 지주보다는 롯데렌탈-쏘카 투자처럼 주요 자회사가 앞단에 서는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란 분석이다. 롯데지주 측은 쏘카 투자 건에 대해서도 ‘롯데렌탈에서 주도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롯데지주가 SK그룹처럼 ‘투자형 지주회사’를 꾀한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롯데의 변화’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이다. SK는 인수 후 매각해 차익을 남긴 사례도 많고, 계열사들로부터의 배당 수익 규모가 크기 때문에 투자 전문회사를 지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현재 롯데지주의 여력을 고려하면 당장 SK처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2021년 9월말 별도 기준 90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배당수익과 상표권사용수익 등을 포함해 연 3000억원 내외의 실질현금창출력을 가지고 있다.
투자를 위한 조달 등 외형확장에는 시장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이기 때문에 시장에서도 롯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지주는 주총에서 배당성향 30% 이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는데, 기업가치를 올려 주주 이익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롯데가 ‘주주 이익’을 강조하며 ‘주주와의 적극적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배치되는 행보를 보인다는 평도 나온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 건도 주총 전까지 공개되지 않다가 주총 직후 이사회를 열어 결의해 공시했다. 회사가 소멸되는 주요 이슈이지만 주총 직전까지 주주들에게 설명이 없었던 셈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지주가 배당 수익 등 활용을 하겠지만 투자 여력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큰 투자를 하려면 지분의 일부를 처분해야 할텐데, 갖고 있는 지분 중에서는 처분할 만한게 딱히 없다”며 “바이오 등 신사업 준비를 어느 정도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롯데엑셀러레이터를 이용해 GS가 하는 것처럼 소규모 지분 투자 등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룹의 주 캐시카우이자 ‘맏형’인 롯데쇼핑은 내부 정리 현안이 쌓여 있어 미래 먹거리 준비에 적극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중고나라에 3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9월에는 한샘 인수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299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지만, 분주하게 청사진을 내놓는 타 계열사들에 비해서는 잠잠한 상황이다. 그룹의 또다른 ‘양축’인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31일 열린 2022 CEO IR데이에서 2030년까지 수소와 배터리 소재 분야에 10조원을 투자한다는 신사업 방안을 발표했다. 친환경 사업에서의 12조원을 포함해 전체 매출액을 50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미래 먹거리 찾기에 ‘혈안’이 된 것도 주력 산업이었던 유통 부문에서 오랜 부진을 겪었고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 탓이 크다.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유통업계 대표 기업인 롯데쇼핑은 2017년 이후 실적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2156억원은 2017년 대비 73%나 감소한 규모다. 2019년 1조 2000억원에 가까웠던 투자액은 2020년 4900억원대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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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쇼핑이 여전히 그룹의 캐시카우인 점은 분명하지만, 과거 대비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줄었다. 지난 2월 롯데쇼핑의 ‘AA-‘로의 등급 하향 이후에도 타 계열사의 조달에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 재무적인 영향도 줄어 크레딧 시장의 시각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그룹의 롯데쇼핑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롯데쇼핑의 움직임에 롯데그룹 상황이 좌지우지된다고 봤다. 이제는 롯데케미칼이 그룹의 캐시카우로 작동하고 있고 계열사들도 각 사업 내에서 각자도생한다는 평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유통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한발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만큼, 최근 롯데쇼핑은 연이은 외부인물 수혈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경영진 및 핵심 임원진에 외부 인물을 앉히면서 변화가 예상되고 있지만 적응 및 정비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다른 계열사들처럼 적극적인 외형확장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평이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계열사들이 투자 등 여러 이슈가 나오고 있지만 지금 롯데쇼핑은 볼만한 이슈가 없다”며 “신사업을 이끄는 부서도 이렇다 눈에 띄지 않아 큰 투자도 없고, 비용제거에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퀵커머스’ 등 유통분야에서 새롭게 하는 것도 겨우 테스트 시작 단계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지 경영진의 고민도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룹의 온라인 통합 쇼핑몰인 롯데온 통합도 계열사들끼리 소통이 잘 안되면서 잘 안되고 있는데, 쇼핑 쪽은 오히려 신사업보다 롯데온 통합 등 기존 프로젝트 진행이 더 중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