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규모 파악도 안됐는데 논의 '이르다' 평
과거와 달리 은행권 건정성 시스템 리스크 낮아
부실 키운 정부가 은행에 부담 떠넘긴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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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자영업자 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배드뱅크를 추진하는 가운데, 논의가 지나치게 설익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에 따른 부실채권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부실채권 규모보다 은행권에서 부담해야 할 출자 규모가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수위는 코로나19로 급증한 자영업자 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분과별 업무 보고에서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지원 연장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6개월 시한부 생명 선고와 다름없다"며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배드뱅크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배드뱅크는 금융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원금을 탕감해주거나 장기 분할 상환 등의 방식으로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특별기금이다.
자영업자 대출 문제가 국내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해당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를 입어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 유예 등 지원을 받는 대출 잔액은 올해 1월말 기준 133조4000억원이다. 이 중 만기 연장이 116조6000억원이고 상대적으로 연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자 상환 유예 금액은 5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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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금융지원이 연장되면서 부실화 규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배드뱅크 설립부터 구체화하는 것은 다소 이르다는 평가다.
한 은행 담당 증권사 연구원은 "금융지원으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도 계속되고 있어 부실화 여부가 측정이 안 된다. 제1금융권 같은 경우 배드뱅크를 설립이 필요할 정도로 대출이 부실화됐다는 징후도 없다"라며 "부실화가 되어야 설립이 진행되는 건데 전제가 잘못된 논의가 아닌가 싶다. 아직은 이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은행들이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배드뱅크 논의가 '이르다'는 지적에 힘을 싣고 있다. 통상적으로 배드뱅크는 부실로 인해 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현재 은행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은행 측 입장에서도 부실 규모에 비해 과도한 출자금을 내게 될 경우 달갑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은행권은 아직 금융당국과 배드뱅크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출자금액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에 설립된 국민행복기금은 자본금 6790억원 중 5000만원을 제외하고 20여 개 금융기관이 출자했는데 대부분이 민간 은행이었다.
금융지원 연장으로 부실 우려를 키운 정부가 은행들의 출자를 통해 부담을 떠넘기려는 정치적 행보라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3월 말에 예정된 대로 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종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압박으로 해당 조치는 9월까지 6개월 연장됐다. 이에 부실채권 비율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0.5%로 2020년말 대비 0.14%포인트 줄었다. 비율뿐만 아니라 절대 규모도 줄어들었다. 요주의이하 여신 잔액은 2019년말 40조원에서 지난해 말 33조5000억원으로으로 6조50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소상공인은 보통 중소기업 대출계정으로 잡힌다. 2019년 중소기업 여신 중 부실채권 신규 발생액이 8조5000억원이었는데, 2020년엔 7조3000억원, 지난해엔 5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원 조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이를 흡수할 여력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각 은행별 충당금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보다 상황이 커질 경우에도 일단 명확한 부실 규모 파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