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공모주 투심 탓 '무리한 상장은 지양'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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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엔지니어링이 연내 상장 가능성을 포기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상장예비심사 효력이 6월 초까지인만큼 이달 중순까지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하면 빠듯하게나마 일정을 맞출수도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 불확실성이 커진 공모주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란 평가가 많다. 올해 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정의선 회장이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한 점도 무리한 상장 추진을 지양하는 분위기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7일 증권가에 따르면 오는 6월6일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예비심사 승인 기한이 완료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월28일 상장 계획을 전면 철회한 뒤 재추진 일정을 내부에서 검토해왔다.
그간 증권가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배구조 개편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연내 상장에 재도전할 것으로 내다보는 의견이 많았다. 표면적으론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다시 진행할 의지가 없어보이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금 마련이라는 대의를 감안하면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평이 우세했다.
다만 최근 들어선 무리하지 말자는 쪽으로 좀 더 분위기가 쏠리는 모양새다.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은 데 따른 것이다. 공모주 시장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데다 조 단위 규모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공모물량을 시장에서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초부터 공모주 시장에서는 저조한 수요예측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철회한 뒤 ‘유니콘 특례 1호’ 바이오회사 보로노이가 수요예측 실패로 상장 계획을 접었다. 대명에너지 역시 지난 2월 상장을 철회했다가 몸값을 대폭 낮춰 상장 재도전에 나서고 있다. 원스토어, SK쉴더스 등 SK스퀘어 자회사들도 지난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업계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역대급 공모규모를 앞세운 LG에너지솔루션 청약에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묶여 있는 점도 뒤 이은 주자로선 부담이다.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은 기관투자자 청약에서 2000대 1을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며 총 주문액이 1경을 웃돌았다. 보호예수 기간이 어느 정도 풀리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기관들의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청약 결과를 보면 6개월 이상 묶여있는 보호예수 물량이 1개월이나 3개월 (보호예수를 건) 물량보다 많다”라며 “100억이나 200억원 정도의 공모물량이야 소화가 되겠지만 조 단위 공모를 상반기에 하기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내부적으로도 비우호적인 시장 분위기를 감수하면서 상장을 강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통상 대기업 계열사의 상장은 ‘잘 되는 것이 본전’인 만큼 안정적인 상장에 방점이 찍히는 사례가 많다.
상장 심사를 진행 중인 현대오일뱅크 역시 과거 대외변수 상황에 따라 두 번이나 상장을 보류한 바 있다. 더욱이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초 한 차례 상장을 철회한 데 따라 ‘두 번의 실패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더해졌다는 전언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과는 별개로 지배구조 개편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전망이다. 올해 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일부 지분 매각으로 약 2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쥐게 됐다.
당초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시 예정된 구주매출 규모의 절반 정도는 현금을 확보한 셈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확보한 현금까지 더하면 약 60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추후 정의선 회장이 지분 20%를 매입한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 등도 남은 과제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상장 재추진 여부가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라며 “시장 상황을 비롯한 대외변수를 고려하고 있으며 4월 중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