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헌이익 흑자라지만 비용 증가도 무시 못해
상장서 다음 이정표까지 버틸 자금 마련해야
4兆 마지노선…시황·이해관계자 등 부담 요소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벽배송 1호’ 마켓컬리(법인명 컬리)의 상장 성적표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회사는 매년 급격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은 떨치지 못한 상황이다. 이익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당장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다. 결국 상장 공모를 통해 어느 정도 자금을 유치하느냐가 컬리의 미래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컬리는 작년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심사가 순탄히 진행된다면 7월께 증시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컬리는 2015년 업계 최초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샛별배송)을 시작하며 부상했다. 전날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가 각광받으며 급격한 성장 궤도에 들었다. 2020년 이후엔 코로나 팬데믹 반사 효과를 봤다. 최근 해외 매체에서 고성장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도 받고 있다.
컬리의 외형은 커지는데 시장의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해마다 2배 가까운 매출 증가세를 보인 반면 영업손실 규모도 커져서다. 신선식품에 특화된 사업 특성상 매출이 늘수록 인건비와 운반비, 포장비 등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제품이 상할 경우 손실도 부담해야 한다. 최근엔 대규모 경력 개발자 채용에 나섰는데,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
컬리가 이익을 내려면 각종 판매관리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매출을 거둬야 한다. 최근 신선식품 외에 화장품 등 공산품 판매를 늘리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컬리가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낸다면 어느 시점일지 점치기는 어렵다. 한때 ‘100조 기업’ 쿠팡도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다. 매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물류센터 확장과 인력 충원 등 비용 증가 요소도 많다. 그때까지 기반을 닦고 경쟁을 버틸 실탄이 필요하다.
-
컬리는 ‘공헌이익’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공헌이익은 매출액에서 변동비를 뺀 금액으로 회사 내부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공헌이익이 얼마나 나야 고정비를 상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고정비가 높은 제조업의 경우 공헌이익률이 높지만, 유통사들은 변동비가 높아서 공헌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다.
어쨌든 컬리는 인프라 투자가 완료되면 완연한 이익구간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동종업계에서조차 공헌이익이라는 개념은 아직 모호한 면이 있고, 사업확장에 따라 늘어나는 고정비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컬리는 분주하게 자본확충에 나선 결과 2020년말 -5288억원이던 자본총계를 작년말 1162억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당분간 대규모 자금 조달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년간 작년 수준의 적자(2138억원)를 유지할 수 있다 쳐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신주를 발행해 3000억원을 조달했다면 2년, 7000억원을 조달하면 4년의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시장에선 컬리 기업가치를 4조~6조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 초기라 공모 구조나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상장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신주를 발행해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컬리로선 상장이 순탄하게 이뤄지면 다양한 사업 확장과 자본유치, M&A 등을 구상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컬리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에 참여하며 회사의 가치를 4조원가량으로 평가했는데 이 금액이 상장의 마지노선이다. 정작 상장 때 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대규모 현금 유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얼마간의 자금을 받고 상장하더라도 오랜 기간 증시에 머물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상장이 되지 않으면 더 난처해진다. 프라이빗 시장에서 훨씬 낮은 가치로 적은 금액을 조달해야 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그마저도 어렵다면 아예 M&A 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아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컬리는 이번 상장에서 신주를 발행해 자본을 늘려야 하는데, 조달하는 자금 규모에 따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달라질 것”이라며 “상장 직전에 투자 수요가 부족해 기업가치를 4조원 이하로 낮춘다면 컬리가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 것이고 투자자들은 상장 후 머잖아 자본잠식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을 앞둔 시장 분위기는 썩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증시는 국내외 각종 경기 변수로 차게 식었다. 지난 2년간 팬데믹 특수를 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실적 호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사 사업을 하는 경쟁사들은 늘어났다. 컬리는 지금까지 투자를 잘 받으며 성장했지만, 그만큼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졌다. 신산업 기업의 차등의결권에 대한 논의는 물건너간 상황이다.
컬리는 올해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커머스 기업과도 상황이 다르다. SSG.COM이나 CJ올리브영은 실적이 좋고 대기업 계열이라는 든든한 배경도 있다. 당장 현금이 유입되지 않아도 살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컬리가 상장을 서두르는 것과 달리 이들 기업은 시장 상황을 살펴 내년에 증시에 입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다.
컬리는 거래소 눈치도 봐야 한다. 거래소는 신산업 기업들이 무리한 가치에 상장했다가 직후 주가가 급락하며 투자자에 피해를 입힌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고 차후 책임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특히나 상장 심사를 보수적으로 하는 분위기다. 컬리로선 기업가치를 크게 높여 잡기 어렵고, 각종 투자자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슬아 대표는 지분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경영안정성을 위해 우호 투자자와 한동안 한배를 타야 한다. 작년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한 투자자들의 회수 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컬리 상장 관계자는 “컬리 경영진들이 분주하게 논의하고 있지만 4조원이라는 기준이 있다보니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김슬아 대표 외에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보호예수 등 장치를 강하게 설정하고 이후 거래소도 빡빡하게 관리하는 식으로 상장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도 “컬리 경영진과 투자자들의 경영안전성 강화 목적의 공동 약정 방안을 거래소와 조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