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소송전에도 관계 유지…"의리·신용 기조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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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과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조성을 추진한다. 지난해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의 친환경 사업에 5년간 최대 5조원을 공급하기로 한 협약의 일환이다. 해당 협약을 계기로 '의리와 신용'을 중시하는 한화그룹이 산업은행과의 스킨십을 늘리며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는 분위기다.
24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산업은행과 ESG 펀드를 조성한다. 규모는 5000억원 수준이다. 한화그룹이 직접 나서 투자자(LP)를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중순 양사가 체결한 '그린에너지 육성 산업·금융 협력 프로그램' 협약의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한화그룹은 산업은행과 5년간 최대 5조원을 지원받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자금은 태양광,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 인수합병 등 ESG 경영활동에 활용된다고 알려져있다. 협약 체결 당시 한화투자증권이 운용사(GP)로 참여하는 녹색기술 관련 기업 육성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는데, 그 이후 두 번째 펀드가 조성되는 셈이다.
협약을 계기로 한화그룹과 산업은행의 관계가 보다 끈끈해졌다는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이 맺은 5조원대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관계가 더 끈끈해진 분위기"라며 "한화에서 투자할 일이 있으면 MOU를 활용하려고 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산업은행 기업금융3실과의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양사 고위 실무진들의 '싱가포르 연줄'도 거론된다. 현재 산업은행 기업금융3실을 이끌고 있는 신승우 실장은 5년여 전 산업은행 싱가폴PF데스크장이었다. 비슷한 시기(2016~2018년) 국민연금 싱가포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김국성 실장은 한화투자증권 글로벌ESG사업 담당자다. 과거 근무지가 겹친 덕택에 '코드가 맞는다'는 평가도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의리와 신용'을 중시하는 한화그룹의 기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한화그룹은 한 번 관계를 잘 맺으면 협상 조건에 '까탈을 부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일례로 통상 기업들이 대출 시 금리 조건을 0.1bp(1bp=0.01%)까지 꼼꼼히 따지는 반면 한화그룹은 여러차례 거래를 해보며 신용을 쌓이는 경우, 은행의 금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또한 한화그룹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이 의지를 가진 투자 건에 전 계열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문화가 있다. 지난달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에 한화시스템이 60억원가량 투자한 것 또한 오너 2세의 상당한 관심이 투자로 이어진 사례로 언급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오너가 의지가 있는 딜이면 모든 계열사들이 동원해서 밀어주는데, 다른 그룹에 비해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가 없어 보인다"라며 "출자하는 입장에선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의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얘기는 대우조선해양 딜(Deal)이 무산되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화그룹은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화그룹은 인수대금 조달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인수에 실패했다. 한화그룹은 선지급한 3000억원 규모의 이행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10년간 소송전을 벌인 끝에 2018년 일부(1260억원)를 돌려받았다.
다만 소송 중에도 산업은행은 한화그룹와 함께 펀드를 조성했다. 2013년 한화그룹은 바이오·제약·화학산업 관련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기 위한 코파펀드(코퍼레이트 파트너십 펀드)를 조성했고, 산업은행은 이에 공동 운용사(GP)로 참여하며 600억원가량 출자했다. 해당 펀드는 2년 뒤 투자실적 없이 청산됐다.
반면 국내기업의 해외 투자를 지원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출입은행)은 한화그룹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 다소 소외된 모습이다. 한화그룹 자금 수요에 대한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부터 여신부서를 산업별 체계로 전면 개편했다. 산업군별로 여신 지원에 나서게 되면서, 기업별 조율 자체가 번거로워진 면이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