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당금 논란에서 드러난 지주와 시장 사이 시각차
느슨한 충당금 기준 속 하반기 경기침체 우려 다가와
실적도 피크아웃 우려...과도한 수익에 규제 이슈도
CEO를 위한 최대 실적? 무리는 화를 부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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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6400억원. 국내 4대 대형금융지주가 올해 1분기 벌어들인 순이익(지배주주 연결기준) 총합이다. 지난해 1분기 3조9700억원 대비 17%나 늘어난 것이며, 사상 최초로 분기 순이익 합계 4조원을 돌파했다.
실적은 사상 최고지만, 주가는 사상 최고가 아니었다. 실적 발표 이후 이들 주요 금융지주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이들의 주가는 2017~2018년 사이 기록한 사상 최고가는커녕, 지난 2월 안팎 도달했던 52주 최고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장주인 KB금융의 경우 2월초 고점 대비 주가 하락률이 10%에 달한다.
이들 금융지주는 최근 수개월 새 실적은 물론, 자사주매입ㆍ소각이나 분기배당 실시 등 주주들을 위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실적의 질과 양도, 주주환원정책도,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호평(好評) 일색이었다.
그런데 왜 주가는 상승 기류를 타고 있지 못하는 걸까.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이 시장의 우려와 금융지주의 인식 사이의 격차다.
충당금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내 4대 지주는 올 1분기 7100억여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는데, 이는 컨센서스(전망 평균치) 8000억원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하반기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물론 지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충분히 최대한 보수적으로, 최악의 스트레스 상황을 감안해 충당금을 적립했다는 것이다. 조(兆) 단위로 충당금을 적립한 JP모건ㆍ골드만삭스 등 미국 은행들과도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다. 회계기준이 달라 미국처럼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크게 적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일정부분 사실이다. 미국회계기준(US-GAAP)은 2019년 개정 회계기준(ASC 326)에 따라 모든 금융자산에 대해 전체기간 기대신용손실을 인식하도록 규정한다.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정상자산에 대해 향후 12개월에 걸친 기대신용손실을 인식하도록 규정한다. 이 차이 때문에 미국 은행의 대손충당금 변동성이 훨씬 크다. 많이 쌓고, 많이 환입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펜데믹이 지구를 덮친 2020년 상반기, 미국 은행의 대손충당금 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309% 늘었다. 심지어 한국과 같이 IFRS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유럽 주요 은행 26곳의 대손충당금 규모도 234% 늘었다. 반면 중소기업은행과 NH농협금융지주를 포함한 한국 6대 금융지주의 대손충당금 증가율은 55%에 그쳤다.
국제회계기준(IFRS9)에 따라 일정부분은 국내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역할을 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 일각에서는 'K-방역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정부'와 '순이익을 줄이기 싫은 금융지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본다.
문제는 이런 느슨한 충당금 기준 속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까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일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 1월의 4.4%에서 3.6%로 낮췄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역시 3.0%에서 2.5%로 0.5%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이번 달부터 시작될 충당금 관련 정부ㆍ은행 합동 태스크포스(TF)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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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도 1분기를 고점으로 피크아웃(고점 뒤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작용하고 있다. 1분기 주요 금융지주 순이자마진(NIM)은 전분기 대비 평균 6bp(0.06%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이전 2년간 상승했던 수준을 단 한 분기만에 뛰어넘었다. 두 차례 단행된 기준금리 인상에, 향후 1~2차례의 추가 인상까지 미리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경제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고려하면 더 이상 기준금리가 상향 조정될 수 있을진 의문인 상황이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실적 개선 기대감은 2월까지의 은행주 주가 급등에 이미 반영됐고, 이후엔 실적 전망 하향 조정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한 증권사 은행 담당 연구원은 "NIM 급등으로 인한 실적 개선은 이미 주가에 반영됐으며, 최근 주가 약세는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에 따른 것"이라며 "성장을 못하게 될 우려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 정책도 주가를 일부 방어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도한 수익 추구에 대한 규제 우려도 서서히 공론화하고 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컨센서스 대비 1분기 실적 괴리율은 평균 16%였다. 이미 시장에서는 국내 금융지주들이 지난해 대비 20%가량 추가 성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데, 이보다 평균 16% 상회하는 실적을 내놨다는 것이다.
배경으로는 예대마진 급상승이 꼽힌다. 2019년말 1.53%였던 국내은행의 잔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8월 1.71%를 거쳐 올해 2월 2.25%까지 올랐다. 2019년 7월 이후 최대이며, 전월보다도 0.03%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으로 최근 2년새 자산이 크게 성장한 가운데, 예적금 금리는 천천히 올리고 대출금리는 우대금리를 폐지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올린 덕분에 은행 수익성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예대금리차 공시를 의무화한 은행법 개정안 등 새로운 규제가 논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국내 대형 금융지주들이 수익 확대에 골몰한 나머지 새로운 규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 규제가 완화되며 신규취급 기준 예대마진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대선 국면과 맞물려 '금리 장사꾼'이라는 인식을 얻은 건 두고 두고 부담이 될 거란 평가도 나온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금융지주 이사회에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잇따라 진출하며 은행의 공적인 기능보다는 수익 추구라는 사기업 본연의 경영 방침이 더 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은행의 경우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상 주주 이익 극대화로만은 접근하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를 향한 우려와 지적은 결국 시장과의 소통이라는 한 점으로 귀결된다. 금융권 실적에 대해 일부 투자자들은 '서프라이즈식 자화자찬'이라며 '만들어진', '과도한' 실적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최고경영자(CEO)의 연임을 위해 '어닝 서프라이즈'나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올해는 4대 지주 중 두 곳의 회장 임기와 두 곳의 은행장 임기가 만료된다. 1분기부터 '사상 최대 실적'을 강조하는 이유가 결국 최고경영자의 연임 때문 아니겠느냐는 냉소적 시선도 있다.
무리한 수익 추구는 결국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하나ㆍ우리금융의 파생결합펀드(DLF)가 그랬고, 신한금융의 라임자산운용 펀드가 그랬다. 올해엔 다시 주로 수수료로 이루어진 비이자부문 수익을 끌어올리겠다는 주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들의 일성(一聲)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