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KB證 선순위 대출…PEF는 별도 매각 법인 설립
재무구조 개선 효과…완전매각 전까진 담보대출 성격
"유가 60~70달러는 돼야 경제성"…장기 전망은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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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이 악성 재고인 드릴십 4척을 팔아 재무구조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매각 대상이 사모펀드(PEF)고 삼성중공업이 대규모 지분출자 부담을 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담보대출 성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진정한 성과를 내려면 드릴십 최종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데, 드릴십을 활용할 때 채산성이 있을 정도로 장기 유가가 고공행진 하느냐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지난 21일 삼성중공업은 큐리어스파트너스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드릴십 4척을 인수하기 위해 결성하는 PEF에 5900억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거래 규모는 총 1조700억원(PEF 운영자금 300억원 포함)으로 삼성중공업이 5900억원을, 선순위 투자자가 1600억원을 각각 출자한다. 아울러 산업은행과 KB증권 주선으로 32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거래 종결일은 5월 18일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수년간 드릴십 악성 재고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2013~2014년 고유가 시기에 드릴십들을 수주했는데 이후 유가가 폭락했고 건조 계약이 줄줄이 해지됐다. 당시 드릴십 인도를 거부한 선주사는 그리스 트랜스오션(前 오션리그), 노르웨이 시드릴, 미국 퍼시픽드릴링사 등이다. 삼성중공업은 6000억원가량의 선수금과 드릴십 소유권을 확보했지만, 나머지 대금은 회수하지 못했다.
드릴십은 당장 일감이 없어 보관(Warm Stack)만 하더라도 유지 비용이 상당한 자산으로 분류된다. 이로 인한 손실이 매년 누적되는 사이 조선업 침체까지 겹쳤다. 2015년 이후 계속 적자를 이어갔고 유동성 확보에 애를 먹기도 했다. 회사는 2016년과 2018년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작년에도 무상감자 및 유상증자에 나서는 등 재무구조 안정화 작업에 분주했다.
작년부터 조선업이 호황 주기에 진입했고 삼성중공업의 수주 성과도 개선됐다. 그러나 수주가 현금으로 이어지는 데까지는 2년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작년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배를 지을 자금력이 충분하다 보긴 어렵다. 선사로의 완전한 매각이 아닌,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 PEF로의 매각을 택한 것도 그만큼 유동성 확보가 급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5900억원을 출자해 1조400억원을 쥐게 된다. PEF는 드릴십을 매각한 후 그 금액을 금융 채권자, 선순위 투자자, 삼성중공업 순으로 배분하게 된다. 즉 드릴십을 최종 매각하기 전까지는 PEF에 배를 맡겨둔 대가로 4500억원의 외부 자금을 받는, 사실상 드릴십 담보 대출에 가까운 구조다.
최종 성적표는 PEF가 얼마나 드릴십 가격을 높여 매각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된다. 큐리어스파트너스는 드릴십 매각을 맡을 별도 법인을 추진하고, 외부에서 매각 담당 전문가를 채용할 계획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부터 삼성중공업과 드릴십 재고 처리를 위해 소통해 왔는데, 조선업이 곧 호황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투자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업 침체기에 HSG성동조선에 투자해 쏠쏠한 수익을 낸 경험도 있다. PEF 특성상 선사들을 상대로 매각을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은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 드릴십 매각은 사실상 담보대출과 비슷한 구조"라며 "PEF가 선사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원매자를 정해두고 추진한 거래가 아니라면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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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가 상승은 드릴십 매각에 호재다. 국제 유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EU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 등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드릴십은 새로운 유정 및 가스정을 탐사하거나 해양 시추를 하는 선박이니 유가가 오르고 화석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야 가격이 비싸지고 찾는 수요가 많아진다. 업계에선 보통 유가가 60~70달러는 돼야 드릴십의 경제성이 있다고 보는데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경우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 강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 하는 변수는 있다. 현재는 유가 상승이 불가피하지만, 갈수록 탄소중립에 대한 압력이 강화하고 있어 석유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미리 점지해둔 상대가 없다면 매각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드릴십의 가치는 떨어지고 삼성중공업의 재무 개선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 선박금융 업계 관계자는 "드릴십을 활용하려면 장기간 유가가 높게 유지돼야 하지만 앞으로 탄소중립 때문에 석유 소비량이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 많다"며 "드릴십을 가져가서 채산성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수자가 많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