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등급 하향, 주주 우려·채권 금리 상향 등 영향多
"ESG 경영 차원에서 책임있는 사후 대책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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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원대에 이르는 직원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은행이 강조해 온 ‘ESG(환경·사회적·기업지배구조) 경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SG 등급 하향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여파도 주목되고 있다. 아직 우리은행 측이 구체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은 가운데 시장에서는 '책임있는'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이 제 1금융권에서 드물게 발생한 대형 횡령 사건인 만큼 당국에서도 엄정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3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관련자를 엄정 조치하고 내부통제 미비점은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우리은행에 대해 수시 검사에 나서면서 우리은행 내부통제 전반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이어 2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등 모든 은행에 내부 통제 전반에 대해 자체 점검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슈가 커지면서 ESG 평가 업계에서도 사건 파악에 나섰다. 당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해당 사건이 우리은행의 ESG 평판에 미칠 악영향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횡령이 자금 관리 체계가 가장 엄격해야 하는 시중은행에서 6년 동안이나 진행됐다는 점, 금액 규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 차원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ESG 요소 중 ‘G(거버넌스)’ 영역에서 ‘내부통제’ 부분은 중요도가 높다.
이사회의 역할을 중심으로 내부통제 시스템 점검이 이뤄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이사회의 ‘감사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기업의 ESG 평가 시 이사회에 내부통제와 관련한 보고가 지속적으로 있었는지, 그에 따라 점검에 나섰는지 등이 고려된다. 물론 시스템이 있어도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통제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없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 ‘내부통제 시스템 자체가 없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외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 사건에 대해 재판부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책임소지에 다른 해석을 내린 것도 해당 부분과 관련한 해석이 관건이었다.
한 ESG 평가 업계 관계자는 “해당 이슈는 ‘논란되는 이슈(Controversial issue)’로 살펴볼텐데, 국내 기업들은 G(거버넌스) 영향이 크기 때문에 G 등급이 떨어지면 전체 ESG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G에서 ‘내부통제 시스템’ 관련한 평가가 이뤄질 때 정량적인 것도 고려를 하지만 정성적인 것도 고려를 하기 때문에 영향은 불가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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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ESG 투자 자체가 자리잡은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회사의 ESG 등급이 떨어져도 당장 시장 내 직접적인 영향은 미미할 수 있다. 해외의 경우 ESG 위반 요소가 크면 심각한 경우 투자를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기도 한다.
다만 평판(Reputation) 훼손과 이에 따른 여파는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우리은행 및 우리금융그룹은 국내 기관들 뿐 아니라 MSCI 등 해외에서도 ESG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부분 최상단 등급을 받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2021년을 ‘ESG 경영 원년’으로 선언하고 ‘ESG 경영원칙’ 등을 제정해 ESG 경영 실천과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설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작년 3월에는 이사회 내 ‘ESG 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손태승 회장 포함 이사 전원이 참여했다. 우리금융은 2월 말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 글로벌이 발표한 기업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국내 금융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인더스트리 무버’에 선정됐다며 “글로벌 ESG 선도기업으로 도약”했다고 자축(?)한 바 있다.
ESG 책임투자를 강화하는 기관투자자들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국민연금도 자체 ESG 평가를 수행하고 있는데, 2022년 2월 25일부터 시행된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정기 ESG평가 결과 종합 ESG 등급이 2등급 이상 하락하여 C등급 이하에 해당할 경우 중점관리사안에 선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향후 해외 주주들도 우리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한 등급이 떨어지면 ‘ESG 섹터’로 투자한 투자자들은 투자를 재검토할 수 있다. 자금 회수 여부 등 영향에 따라 향후 회사가 채권을 발행할 때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사건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도 문제다. 만약 당국이 해당 횡령의 책임 범위를 행장 등 최고 경영진까지 보고 징계를 내리는 등 “경영진이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난다면, 해당 경영진이 향후 다른 기업의 사외 이사 등으로 참여해 기업활동을 하려고 할 때 국민연금이 ‘반대’를 할 수 있다. 다만 횡령이 2012~2018년 동안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전(前)·현(現) 행장은 무관하다고 보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ESG 경영 차원에서는 회사의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는 평이다. 해당 이슈와 관련해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다면 재빠르게 인정하고,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터닝 포인트’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들도 이러한 사후 관리를 감안하고 평가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이사회 차원에서도 해당 이슈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토하고 후속 대응에 나서는 ‘액션’을 보여야 할 전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고 우리은행이 어떤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 지, 얼마나 빨리 책임감 있는 대응에 나설 지가 ESG 경영 차원에서 더욱 중요하다”라며 “가급적 CEO가 직접 대응하면서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금융당국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민감한 시점인만큼 우리은행 측은 아직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진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우리은행 임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시지가 횡령 사태와 관련해 이 행장이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다. 이 행장은 해당 메시지에서 "공적자금의 멍에를 벗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에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될 횡령 사고가 발견됐다"며 "현재 관련 직원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조사 결과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추가 연관자들이 있다면 그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은행은 아직 이 건과 관련해 대형 법무법인을 물색하는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섣불리 외부 대응에 나섰다가는 시장에 조급하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당국의 조사가 보다 구체화하기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금융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그룹에서 은행이 가장 큰 자회사이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본다”며 “내부통제와 관련한 이슈로 갈텐데, 과거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이후 개선이 됐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