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제지·아시아나항공 등 투자자 몰려
상향 리픽싱 조항에도 ‘투자처 제한적’
-
얼어붙었던 전환사채(CB) 발행 열기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그간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규제 변화로 CB 발행이 주춤했는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자금조달 수단이 제한적인 중소·중견기업으로서는 CB 발행을 통한 자금 확충이 절실하다. 투자자로서도 증시 불안으로 투자 리스크가 확대된 만큼 CB 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CB 발행에 나서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행 조건도 나쁘지 않다. 약 3000억원 규모의 무보증 영구 사모 전환사채(CB)이며 표면 이자율과 만기이자율(YTM)은 모두 5%다.
이미 발행을 마친 기업들 중 CB 투자자 모집에 성공한 회사들도 적지 않다. 최근 진원생명과학, 국일제지, 서진오토모티브,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등이 모두 CB 발행에 성공했다. 규모는 약 60억원부터 100억원 수준으로 다양하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해당 조건의 CB 발행이 어렵지 않을까 했던 회사들도 모두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다”라며 “기업들도 다시 CB를 찍으려고 시장 상황을 살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동안 CB 시장은 사실상 전면 휴업일 정도로 한산했다. 작년 말 CB 리픽싱 상향 조정 규제가 생기면서 그동안 투자자에 유리했던 조건에 변화가 생겼던 탓이다. 이전까지는 주가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도 하향 조정된 전환가액에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주가가 오르면 조정된 전환가액도 상승하게 됐다. CB의 투자 매력도가 다소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올해 초 터진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까지 겹치며 증권사 CB 발행 부서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이어졌다. 대개 CB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중소·중견기업이 많기 때문에 내부통제가 다소 미흡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어지는 증시 불안에 증권사 PI(고유계정·자기자본) 투자 부서나 운용사들 역시 CB 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어렵다는 전언이다. 통상 증권사 PI부서나 운용사 펀드에서는 채권 투자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비상장 주식을 담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연기금이나 공제회처럼 주식 트레이딩을 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CB 등 메자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투자 방식으로 BW(신주인수권부사채)나 RCPS 등이 있지만 발행사나 투자자 입장에선 CB가 더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BW는 발행사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CB보다 많고, RCPS는 명목상의 형태가 주식이기 때문에 CB보다는 리스크가 크다.
일각에서는 CB 리픽싱 상향 조정 자체가 투자자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전보다 투자 수익률이 다소 떨어질 가능성이 있을 뿐 여전히 안정적인 투자처로 꼽힌다는 것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5년 동안 메자닌 투자 호황 시기와 맞물리며 증권사 PI 부서들이 CB 투자에 많이 뛰어들었다”라며 “안정적이면서 투자 수익도 쏠쏠했기 때문이다. 최근 상향 리픽싱 규제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RCPS나 BW보다 이점이 있어 다시 CB를 찾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기존 전환가액 이상으로 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환가액 상향 조정이) 투자자 입장에서 손해는 아니다”라며 “기존에 상향 규제가 없었을 때보다야 투자 수익률이 줄어들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투자를 피해야할 정도는 아닌 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전환가액 조정률이 여지가 있다는 점도 투자자에게 유리한 지점으로 꼽힌다. 작년 말 변경된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주가가 상승할 시 상향 리픽싱 정도는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제한된다.
규정상으로는 70%까지만 상향 조정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아직까지는 발행사들이 일부만 상향 조정하는 조건을 내건 사례가 많지 않다. 다만 규제 상으론 가능한 만큼 향후 조건들을 관망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이에 자금조달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들은 CB 발행에 다시 나서는 분위기다. 이들 기업으로서는 사실상 CB가 몇 안 되는 자금조달 방식으로 꼽힌다. 유상증자보다는 CB 발행 시 투자자 모집에 유리한 데다 채권을 발행하기엔 이자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다.
이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사실상 CB 발행의 명맥이 끊겼던 만큼 기업들로서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라며 “일반적으로 CB 만기가 3년인데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들이 반년 정도는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소 불리한 조건이라도 CB 발행에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