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 부각...내년 '금리 인하' 언급까지
곡물값 급등...2분기 물가 '피크아웃' 불가능 우려
韓 환율 수혜 기대...中 침체와 무역감소는 변수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금은 '온택트(on-tact;비대면 기술 기업의 통칭)는 힘들다'는 대명제 하나 외에는 그 어느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증권사 연구원)
더 복잡해졌다. 5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만 해도 시장을 판단하는 데 유일한 변수는 인플레이션이었고, 미국의 고용지표만 좀 더 챙기면 됐다. 지금은 아니다. 경기침체(리세션) 여부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막 상승하기 시작한 곡물가는 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벌써 경기침체 우려가 턱 밑까지 찼고, 이로 인해 내년부터 미국이 다시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2차례 이상 기준금리 50bp 인상이 예정돼있는데, 시장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의 경우 원달러 환율과 이에 따른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 수혜, 대(對)중국 수출 규모 변화 등의 변수가 추가된다. 자연히 주식도 채권도 '난장판'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지시간 24일 라파엘 보스틱 미국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9월 이후엔 금리인상이 중단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며 9월까지 향후 2~3번의 50bp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경제지표에 따라 9월 이후엔 인상 사이클이 끝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앞서 지난 20일엔 강경 매파로 유명한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가 "빠르면 내년부터는 금리 인하로 돌아설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에 힘입어 이날 나스닥은 장중 3% 가까웠던 하락폭을 모두 만회했다. 23일에도 금리 인상 중단 발언에 힘입어 미 증시는 모두 강세를 보였다.
지난 12일의 절망적인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증시는 하락을, 채권 금리는 상승을 거듭했다. 미국의 4월 CPI가 전문가 예상치보다 훨씬 높게 나왔던 까닭이다. 특히 근원CPI가 전월대비 0.6% 상승하며, 2분기 중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고점 도달 후 하락)할 거란 믿음도 약해졌다.
널뛰기 기준금리 전망 뒤엔 현실화하기 시작한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다.
경기를 전망하는 선행지수인 미국 국채 5년물 대비 5년 선행 기대인플레이션 값은 4월말 2.7%를 고점으로 현재 2.2%까지 내려온 상태다. 경기침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3분기 선행 OECD 경기선행지수도 최근 '경기수축'을 의미하는 100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제조업 지수 역시 올 3분기 '위축' 국면인 50선 아래로 내려갈 것이 유력하다.
KB증권은 "지금까지 미국 ISM제조업지수가 49 이하였던 때 금리인하에 나서지 않은 적은 없다"며 "올해 가을쯤엔 (경제지표에 따라) 금리인상 중단 뿐만 아니라 금리인하 가능성이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문제는 역시 침체의 강도다. 시장 일각에선 여전히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피크아웃 기대감은 옅어지고 있다. 20일 발표된 4월 독일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비 33.5% 올라 이전 달의 사상 최고치(30% 상승)를 경신했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어려울 거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직 미국 등 주요국 물가엔 식료품 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분석이다. 시장을 놀래킨 미국 4월 CPI에서 식품 부문은 전월비 1.0% 상승에 그쳤다. 그러나 밀 대두 등 주요 작물의 국제 시세는 크게 상승한 상태다.
미국 소맥 부셸당 가격은 올해 초 740달러선에서 올해 한때 1350달러선까지 치솟았고, 지금도 120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달 들어선 비교적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던 설탕값마저 오르기 시작했다. 원재료 재고가 소진되고 난 뒤인 올 하반기부턴 곡물가 상승이 식품 가격을 밀어올릴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에너지 가격에 곡물 가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꺾이지 않는데, 높은 금리로 인해 경기는 위축되며 성장률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수도 있다"며 "가급적 보수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며 성장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섹터를 가려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국내 증시가 전 저점을 무너뜨리지 않고 코스피 기준 2600선에서 버티고 있는 건 환율과 이로 인해 부각된 밸류에이션 매력 덕분이라는 평가다.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0.9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5배까지 떨어진 상태다. 2020년 3월 폭락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들의 이익 수준도 나쁘지 않다. 1분기 코스피 상장기업 전체 영업이익은 50조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4% 오르며 우려에도 선방했다.
최근 원달러환율이 1270원선을 오가며, 기업의 이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현재 올해 코스피 영업이익 전망치는 253조7000억원으로, 4월 하순 이후 한 달간 5% 넘게 상향 조정됐다. 지난 2월 이익 전망치 하향 조정이 시작되기 전 수준까지 회복한 상황이다.
환율 효과로 인해 반도체ㆍ자동차 등 수출대기업 수혜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이투자증권은 "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한국을 구한 것은 제조업 역량과 환율효과였다"며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고, 주요 수출업은 건재하므로 이전과 같은 로직이 작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 경기가 최악이라는 점은 앞으로 상당기간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발표된 중국 4월 경제지표는 2년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소비증감률은 마이너스(-) 11.1%로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으며, 산업생산 역시 -2.9%로 2년만에 하락 전환했다.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6.1%, 투자 증감률은 전월대비 4.9%포인트 하락했다.
5월 1일부터 20일까지의 국내 수출증가율은 전년동기 대비 24.1% 성장했지만, 대중국 수출은 6.8% 성장하는데 그쳤다. 대중국 수출 부진 장기화시 수출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둔화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반도체 수출 역시 중국 악재가 지속된다면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증권사 시황 담당 연구원은 "경제에 밝은 리커창 총리가 전면에 나서고, 시진핑 주석은 중병설 등이 돌며 중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커진 상황"이라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무역제재 완화를 시사하면서도, 대만 유사시 군사개입하겠다는 발언을 내놔 미중 관계 역시 안갯 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