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로 드러난 시장 변화…새 리더십 아래 신중한 기류
테슬라 벽 더 높아지고 中 LFP 비중 확대…분수령 돌입 평
파트너십·수주잔고만으론 경쟁력 유지 불가…새 국면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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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터리 3사가 중장기 전략 재점검에 들어갔다. 최근 발표된 1분기 성적표로 예상보다 빠른 시장 변화가 드러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수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그간 각사가 취해 온 전략도 본격적인 분수령을 맞이할 전망이다. 전기차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주잔고를 불리는 것이 곧바로 기업 가치로 이어지던 시절이 막을 내렸다는 얘기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현재 중장기 전략에 대한 내부 보고와 검토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매년 상반기 결산을 앞둔 시점 전략 점검이 이뤄졌지만 3사 모두 지난해 새 리더십을 맞이한 만큼 신중한 기류가 감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재료 비중부터 폼팩터, 가격 전략 및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등 신사업 계획까지 재고해 하반기 이후 체감할 수 있는 전략 변화가 예고된다.
우선 배터리 전기차 시장 전반이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전방위 비용 증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3사 모두 생산능력과 수주잔고가 글로벌 5위 이내인 만큼 장기 공급계약 및 판가 연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고객사인 전방 전기차 업체와의 가격 협상력은 물론 개별 차량 흥행 성적과 수익성 등을 따져보면 기존 시각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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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분기 성적표가 이 같은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을 거란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3사가 각각 권영수 부회장, 최윤호 사장,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맞이하며 자체 점검에 들어간 것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경쟁사 동향이나 분위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1분기 성적표에서 중국 배터리, 전기차 기업의 점유율이 두드러지게 늘어났는데 3사의 관심 밖이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의 경쟁 구도가 바뀌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배터리 시장은 중국 시장을 장악한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을 제외하면 삼원계 리튬이온배터리 중심인 국내 3사의 입지가 워낙 견고했다. 전기차 시장도 압도적 1위가 없는 경쟁 체제가 장기간 지속될 거란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공급망 붕괴가 한창인 1분기 테슬라와 기존 완성차 사이 격차는 더 벌어졌고, LFP 배터리는 국내 3사에 더 위협적 존재가 됐다.
깊이 들어가면 강력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수주 경쟁이 배터리 기업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미 시장에선 배터리 사업의 수익성이 기존 화학 사업보다 좋을 뿐 반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당장 배터리 사업의 시장 가치를 지탱하는 남은 변수가 전체 시장 규모인데, 전기차가 팔리지 않으면 이마저도 성립하지 않게 되는 것.
지난해까지 LG엔솔은 GM, SK온은 포드, 삼성SDI는 스텔란티스라는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자체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미국 의중이 강력하게 반영된 결과지만 국내 기업이 미국차 3대장 전동화 전략의 인프라 투자를 맡는 것 자체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이후로는 각각 파트너십에 따라 수주 내용에 있어 허와 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폭스바겐은 MEB 플랫폼 기반 전기차 신차를 연이어 출시하며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을 바짝 뒤쫓았지만 1분기 점유율은 테슬라의 절반에 그쳤다. 이미 시장에선 점유율 1위 테슬라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배터리 관련 사업에는 프리미엄을 반영하고 있다. 계획대로 판매가 불가능한 전기차 기업에서 수주받은 물량이 대부분인 배터리사는 그 반대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는 점에 가려져 있지만 폭스바겐 id 시리즈가 시장 반응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전기차가 안 팔리면 합작법인(JV)으로 캐파를 공유하는 배터리사까지 줄줄이 리스크에 노출되는 구조인데 누가 어떤 동아줄을 잡았는지 지켜봐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3사도 향후 신형 배터리 개발을 포함해 원자재 수급 및 수주와 증설 전략에서도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최근 LG엔솔의 모회사인 LG화학은 글로벌 양극재 1위 업체인 유미코어의 인수 가능성을 내부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많지만 LG그룹 차원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사업의 중요성이 높아진 만큼 여러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는 것이란 분석이다.
이어 고객사인 전기차 기업의 전략 변화에 맞춰 차량용 LFP 개발 및 기존 배터리 소재 구성의 변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배터리 전기차 시장의 경쟁 구도가 성능 외 가격과 생산효율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도 지난 2020년 테슬라 배터리 데이 이후 두꺼워지는 원통형 전지 트렌드에 맞춰 동남아시아 지역에 시험용 양산 라인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SK온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공장 파트너사로 선정되며 구체적인 투자 시점과 규모를 협의 중이다. 반면 시장에선 경쟁사에 비해 우려스럽단 반응도 늘어나고 있다. 상반기 중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던 최대 4조원 이상 규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작업이 비교적 잠잠해진 상황에서 1분기 실적마저 예상치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3사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BEP)을 넘기지 못했음에도 가장 가파른 증설 계획을 내놨던 만큼 진행 중인 투자 유치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감안하더라도 1분기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다소 완만해졌기 때문에 완성차 기업은 물론 배터리 기업에 대한 시각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라며 "시장 환경까지 고려하면 배터리 관련 사업의 밸류에이션도 지금보다 더 올라가기 힘들 가능성이 커 하반기로 갈수록 각사 변화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