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금 넘치는 벤처·유니콘 생태계…'버블' 키우는 기업성장펀드
입력 2022.06.09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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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요즘 벤처 기업이 투자를 못 받습니까? 아니면 시장에 돈이 없습니까?”

      자본시장에 넘치는 유동성은 개업 초기의 스타트업, 기술력을 인정받은 예비 유니콘 기업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게 한 계기가 됐다.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성장금융, 모태펀드 등을 통해 벤처캐피탈(VC)업계, 유니콘 기업에 정책자금을 댔고 대형 금융기관, 중소형 운용사들까지 비상장 기업 투자에 가세했다.

      만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100조원의 몸값을 인정받은 쿠팡의 전례. 크래프톤과 하이브의 화려한 증시 데뷔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던 투자자들에 대한 환상. 야놀자와 같이 언젠가 손정의 회장(소프트뱅크)의 통 큰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아직까지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지만 상장만 하면 얼마든지 투자금을 회수 할 수 있을 것이란 컬리 투자자들의 희망 등. 어찌보면 ‘착시’에 가까운 사례들이 지난 수년 간 쌓이면서 예비 유니콘 기업,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들불처럼 번져왔다.

      여전히 VC업계와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 주변엔 대기 자금이 넘쳐난다.

      2016년 총 2조1000억원 수준이던 벤처투자 자금은 지난해 7조6800억원까지 증가했는데 정책 자금의 출자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의 유니콘 기업이 3곳에서 18곳으로 증가한 효과를 봤다. 하지만 앞으론 현재 유니콘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기술력과 성장성으로 인정 받고 영속가능한 기업이 될 지, 아니면 ‘돈의 힘’으로 보기 좋게 다듬어진 껍데기였는지는 판가름 나는 시기가 온다.

      유동성 파티의 끝에서 정부는 개인투자자들도 손쉽게 비상장 회사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이하 기업성장펀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폐쇄형 공모펀드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일반투자자들이 비상장·유니콘·벤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게 목적이다.

      스타트업, 벤처 투자 자금의 성격은 그야말로 모험자본이다. 성장성에 주목하고 불안정함에 베팅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더 큰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정책자금이 투입돼야했고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일부 민간 자본이 투자해왔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공모펀드가 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면서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한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금융위원회의 발표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기업성장펀드의 투자자 보호장치는 자산총액의 10%를 국채와 통안채에 투자하고, 공시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피투자기업의 주요 경영사항, 하위법규 등을 공시함으로써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게끔 하겠단 의미이다. 일반 투자자들로선 반길만 하다.

      대규모 공모펀드 자금이 없어도 VC-스타트업-유니콘의 생태계에서 자금은 모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비쳐보면 반대로 투자금을 받고자 하는 기업들이 이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해당 자금을 꼭 받아야할 유인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스타트업, 진짜 실력을 인정받은 유망한 기업이라면 그 유인이 더욱 적다. 반대로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니면 인기 없는 비상장회사들을 대상으로 투자한다면? 기업성장펀드의 리스크가 커지는 역효과가 난다.

      사실 일반 투자자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벤처투자조합과 사모펀드를 통한 벤처기업 투자금 모집은 여전히 성황중이고, 매년 늘어나고 있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를 통한 투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성을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이다. 이러한 자금들이 VC 생태계를 지탱해왔다. 이마저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자금이 몰리다보니 투자 단계의 손바뀜이 일어날 때마다 “위험하다”, “불안하다”는 평가들이 나오곤 했다.

      기업성장펀드 도입 이후에도 현존하는 벤처기업의 투자 방식은 유지된다. 현행 벤처 투자의 방식에 대한 규제 강화는 없는데 펀드당 300억원 이상의 기업성장펀드가 벤처투자 시장에 합류한다면 돈으로 돈을 막아온 ‘버블’은 더 오래 지속하게 된다. 투명성 강화한 기업성장펀드를 차치하고, 정부가 기존의 벤처 투자펀드의 안전 장치를 마련할 의지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기업성장펀드는 환매가 어려운 만큼 수익증권 상장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이 중도에 투자금회수(엑시트)에 나설 수 있도록 한다. 기존에 폐쇄형, 즉 환매금지형펀드들의 전례를 살펴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동산펀드, 특별자산펀드, 혼합자산펀드 등의 펀드들은 발행일 이후 의무적으로 90일 이내에 수익증권을 상장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상당수의 ‘상장’ 폐쇄형 펀드들의 수익증권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해당 거래를 지원하지 않는 증권사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익증권 상장을 개인투자자들의 엑시트 창구로 활용하겠단 발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기업성장펀드 추진의 의의, 즉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비상장투자를 통한 수익을 안겨주겠단 의미를 이해한다하더라도 시기가 적절치 않아보인다.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의 옥석가리기를 시작했고, 유니콘 기업들에 대해서도 매출과 이익, 비용구조 등을 면밀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몇 달 사이에 수 십억~수 백억원씩 몸 값이 치솟는 과거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3년간 한국거래소의 기업공개 심사는 상당히 느슨했다. 정부는 코스닥 상장기업 벤처펀드(이하 코스닥벤처펀드)를 장려하는 등 유동성 잔치를 부추켰다. 이를 통해 일부 유니콘 기업의 창업주와 투자자들은 엑시트에 성공했지만 증시 입성 후 막차에 올라탄 투자자들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기업가치의 거품이 거치고 있는 시점, 거래소의 기업 상장 심사는 여느때보다 깐깐해졌다. 수년 간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유니콘 기업들의 상장도 이젠 불투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처 투자 활성화를 위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으겠단 방향성은 자칫 정부와 기관들의 부담을 일반투자자들에게 전가하겠단 의미로 비쳐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