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 낙하산 인사에 성장 정체...관리조차 '구멍'
입력 2022.06.13 07:00
    KB저축은행 94억 횡령...지난해 사내 감사서 발각
    모회사 은행 출신 낙하산 천지...해이한 경영관리
    업계 1위와 순익 격차 18배 달해...1인당 생산성도 바닥
    CEOㆍ관리직급까지 모두 전문가 지향 조직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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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모회사인 은행에서 낙하산 인사가 날아오는 게 당연시되는 구조 속에서 '구색 맞추기용 계열사', '은행 2중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횡령사고까지 터지며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저축은행 업계의 터줏대감들과는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고객군과 다루는 상품이 엄연히 다름을 인정하고, 지주 차원에서도 '저축은행 경영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일 KB저축은행의 한 40대 직원이 9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직원은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6년간 도장 사본을 이용해 결재 문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빼돌린 자금은 온라인 도박 등에 대부분 탕진했다. 지난해 말 은행 자체 감사에서 처음 적발됐는데, 당시 파악된 횡령 금액은 30억여원이었으나 경찰 조사에서 3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 4월 우리은행 직원의 614억원 횡령, 지난 5월 새마을금고 직원의 40억원 횡령에 이어 매달 금융권에서 직원윤리 관련 사고가 터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직원 교육 및 관리가 비교적 철저한 KB금융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룹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에 그리 기여도 하지 못하는 계열사인데 직원 관리가 안됐고, 발견에 6년이나 걸렸을 정도로 내부통제도 엉망이었던 셈"이라며 "횡령 규모와 상관없이 미디어에 KB 이름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평판이 상당히 훼손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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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일각에서는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의 해이한 경영관리 실태를 감안하면 예견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모회사인 은행 직원들에게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부행장ㆍ행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임원이 퇴직 전 거쳐가는 종착역'의 이미지가 강하다. CEO 뿐만 아니라 주요 임원들도 은행 출신들이 내려오는 경우가 흔하다. 저축은행은 카드ㆍ캐피탈과 더불어 '은행 공채 출신의 뱅커(banker)가 맡을 수 있는 업무'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신홍섭 전 행장은 국민은행 동부지역본부장, 소비자브랜드전략그룹 전무를 지냈다. 현 허상철 행장도 남부지역영업그룹 대표, 스마트고객그룹 전무를 거쳐 취임했다. 신한저축은행 이희수 행장 역시 은행 기관그룹장ㆍ영업그룹장을 거쳤고, 신명혁 우리금융저축은행 행장도 우리은행 자산관리그룹 집행부행장과 지주 자산관리총괄 부사장 출신이다. 

      이렇다보니 사내 분위기는 KB는 물론, 신한ㆍ우리를 막론하고 지주계열 저축은행은 '복지부동' 성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은행 출신 관리 직급은 실적보다 위계만 중시하고, 젊은 직원들은 적당한 워라밸(일과 삶의 밸런스)을 즐기다 다른 금융권으로 이직하기 위한 발판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실무자 출신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도 결재를 전산이 아닌 수기로 올리는 곳이 있을 정도로 그룹 이름값을 못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며 "낙하산으로 날아오는 행장들 역시 아무리 잘 해봐야 지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으니 임기만 채우다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는 실적으로도 곧바로 드러난다. 저축은행 업계는 금융지주 계열과 독립계열의 실적 격차가 금융권 내에서도 유난히 큰 편이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 기준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과 KB저축은행의 순이익 격차는 18.5배에 달한다. KB저축은행이 189억원을 버는 동안 SBI저축은행은 3494억원을 벌어들였다. 카드ㆍ증권ㆍ보험 등 지주 내 주력 계열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지주 계열 중 가장 순이익 규모가 큰 신한저축은행 역시 업계 2위 OK저축은행과 8배 이상 실적 격차가 나는 판국이다. 물론 자산 및 직원 규모의 차이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생산성 자체가 떨어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는 평가다. SBI저축은행의 임직원 1명당 순이익은 5억7500만원에 달했는데, 신한저축은행 임직원 1명 당 순이익은 1억5300만원, KB저축은행은 1억400만원에 불과했다.

      신용등급 1~3등급의 고신용자 및 대기업을 위주로 영업하는 시중은행과 4등급 이하의 중ㆍ저신용자와 중소기업ㆍ개인사업자를 위주로 영업하는 저축은행은 경영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창고의 냉동육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하는 육류담보대출은 저축은행업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한 상품이다. 최근엔 의료기기나 LED조명 등 내구재 상품에 대한 할부금융 상품을 개발해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 증권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업계 출신 외부 CEO를 앉힌 하나저축은행(오화경 전 아주저축은행ㆍ아주캐피탈 대표) 역시 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CEO 하나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관리직급까지 전문가 지향 조직으로 바꾸고, 인재를 모회사 수준으로 대우해 박탈감을 줄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