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으로 CVC 시도 봇물
신기사·창투사 라이선스 필요하지만
금감원 인력 부족·수요 급증으로 지연
시장 상황 악화와 맞물려 오히려 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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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작년 말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으로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설립의 문이 열렸지만 실제 설립을 마친 곳은 많지 않다. 법규제상 창업투자회사(창투사)나 신기술금융사업자(신기사) 등록이 필요한데 수요가 몰리며 시일이 많이 걸리고 있어서다.
그 사이 IPO(기업공개) 및 VC(벤처투자) 투자 시장이 다소 위축되며 CVC 설립을 준비하는 회사들은 내심 안도한다는 후문도 들린다. 막상 설립하더라도 좋은 딜(거래)을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을 빗댄 푸념이다.
GS그룹은 지난 7일 대기업 10대 그룹 가운데 최초로 신기사 등록 절차를 마쳤다. GS그룹이 CVC 설립을 알린 지 5개월 여 만이다. 올해까지 CVC 설립과 등록을 모두 끝낸 대기업은 동원그룹에 이어 두 번째다. 작년 말부터 효성, LG, LX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잇따라 CVC 구성을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실제 등록을 마친 곳은 많지 않은 셈이다.
중견 기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 CVC 설립을 예고한 에프앤에프(F&F), 디에스네트웍스, 제주맥주 등은 아직 신기사 등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SM엔테테인먼트 산하 SM컬처파트너스 역시 현재 신기사 등록을 진행 중이다.
CVC 설립을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창투사 또는 금융감독원에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사 등록을 받아야 한다. 창투사는 자본금 20억원, 신기사는 자본금 100억원이 필요하며 각각 벤처기업, 신기술사업자에 투자할 의무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신기사가 투자 대상이 넓기 때문에 자본금 여력이 되는 곳은 신기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기업 등이 잇따라 CVC 설립에 나서며 수요가 몰리자 등록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특히 금감원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는 신기사의 경우 일정 요건을 맞추면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지만 인력 부족에 약 6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금감원 내 CVC 등록 담당 인력이 부족해 다소 일정이 밀리고 있다”라며 “다만 인가나 허가가 아닌 등록 절차이므로 시일이 걸릴 뿐 요건만 맞으면 마무리 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일부 CVC 실무자들은 등록 지연에 속으로 반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올해 초부터 IPO 뿐만 아니라 VC업계 투자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 따라 ‘마땅한 딜이 없다’는 푸념이 많아지고 있는 탓이다.
특히 새로 설립하는 CVC는 하우스의 트랙 레코드(투자 사례)보다는 개별 딜의 매력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투자금 회수(엑시트) 속도가 빠른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 딜을 주로 투자하는데, 최근 IPO 시장이 얼어붙으며 좋은 딜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초기 평판이 중요한 CVC의 경우 질을 따지지 않고 프리 IPO 딜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매출과 손익 등 소위 ‘숫자가 나오는’ 회사를 찾지만 현재와 같은 매수 우위시장에서 투자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덜컥 투자했다가 1~2년 후에 IPO가 어려워지거나 세컨더리(PEF 간 거래)를 통한 구주매출 길이 막힐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CVC 설립을 고려하던 일반 기업들 중 창투사나 신기사 등 라이선스를 직접 얻기보다 다른 하우스와 코지피(Co-GP·공동운용) 형태로 선회하기도 한다. 시장이 위축된 만큼 당장 본격적인 행정 절차에 돌입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설립을 한 CVC의 경우 실무진으로서는 투자자 모집이 쉽도록 호흡이 짧은 딜을 소싱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라며 “차라리 이런 시장에선 등록이 지연되는 게 맘이 편하다는 자조적인 한탄도 나온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