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중요한 IPO업계 "시사점 있어", '70년대생 소외감'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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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조직으로 꼽히는 기업공개(IPO) 관련 조직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말 미래에셋증권의 파격인사를 시작으로 NH투자증권 등 주요 대형증권사들이 잇따라 젊은 인력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IPO 업계는 네트워크의 폐쇄성과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 과정 등의 특성으로 인해 그간 '연륜'이 중요시 돼왔다.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분 건 오랫동안 지속돼온 인사 적체와 더불어, IPO 업계의 새 주요 고객이 된 벤처기업 임원들의 평균연령이 내려가는 추세가 영향을 줬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ECM사업부 내 IPO 담당 신임 팀장으로 80년대생 직원을 내정했다. 아직 정식 인사 공고는 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공유된 상황이다. 이는 최근 ECM1부를 이끌던 서윤복 상무가 신한금융투자 IPO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배경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엔 자기자본 기준 국내 1위인 미래에셋증권의 파격인사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당시 70명의 팀장과 지점장을 신규 선임했는데 그 중 33%가 80년대생이었다. 임원 승진 명단에도 80년대생의 비중은 16%가량이었다. 대신증권의 경우 이미 2~3년 전부터 IPO부서를 80년대생 위주로 꾸렸다. IPO 담당임원인 나유석 상무조차도 업계에선 젊은 편인 1974년생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의 파격인사를 시작으로 KB증권, 대신증권 등도 세대교체가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라며 "오히려 NH투자증권의 세대교체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전의 흐름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평가다. 그간 IPO업계에서 '연륜'은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IPO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임원 자리엔 대부분 2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터줏대감'들이 올라가는 게 기본이었다.
'오랜 경력'은 IPO 업계 외부 인력 수혈의 기준점이 돼왔다.
신한금융투자가 올해 3월 김상태 전 미래에셋증권 대표를 글로벌투자은행(GIB) 총괄 사장으로 영입한 배경 중 하나로도 경력이 꼽힌다. 김 대표는 크래프톤, SKIET 등 상장주관을 맡은 경력을 토대로 신한금융투자의 ECM 실적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유안타증권으로 이적한 김병철 기업금융본부장도 삼성증권 시절 온미디어, 삼성카드, BGF리테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상장 주관을 맡은 경력이 있었다.
이런 기조가 바뀌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인사 적체가 꼽힌다. 경력을 중시하는 측면이 강하다보니 한 인물이 임원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주요 국내 증권사 IPO 본부장급 임원의 평균 재임 기간은 4년을 훌쩍 넘는다.
해당 이슈로 인해 지난 5년간 IPO 업계엔 팀장-부장급 인력의 이직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핵심 실무자급의 이탈은 조직 안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만큼, 최고경영진 측에서도 이를 해소하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상장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벤처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 재무책임자(CFO)들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객사의 젊은 임원들이 자연스레 증권사의 젊은 책임자급 임원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빅테크 계열사의 경우 80년대생 임원들이 IPO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비슷한 연배의 실무진을 전진 배치시킨 특정 증권사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주관사단 명단에는 트랙레코드 등에서 다소 무게감이 떨어짐에도 불구, 해당 증권사가 포함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단 경력이 오래된 IPO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짙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80년대생으로 팀장급이 대거 교체되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기 어렵다"라며 "IPO 업계는 아무래도 연륜이 중요한데 평균 연령이 낮아지며 고객 신뢰 등에 이슈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60년대생 임원 밑에서 경력을 쌓아온 70년대생 임직원들의 소외감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60년대생들은 '386 세대'라는 말을 시작으로 꽤 오랫동안 사회적 리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데 그 이후 80년대생으로 급격히 세대교체가 되면서 70년대생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