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대표의 이해상충 논란, 법과 상식 사이의 '머나먼 간극'
입력 2022.06.22 07:00
    취재노트
    존 리 대표 배우자 투자 회사에 메리츠운용 펀드 60억 투자
    메리츠운용 "법적인 문제는 없다"...업계선 "상식 밖의 일"
    이해관계인 해당 여부 등 첨예한 논란은 금감원 판단 몫으로
    존 리 대표의 위상에 타격...메리츠운용 AUM은 이미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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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 지난 2019년말, 삼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은 월급통장을 바꾸고 대출을 갈아타는 등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감사인 지정제에 따라 KB금융지주를 새로 맡게 된 까닭이다. 외부감사법에 따라 회계사들은 소속 법인이 감사를 맡은 은행과 3000만원 이상의 금전 거래를 할 수 없다. 삼정은 20여년간 신한금융지주를 담당해왔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KB국민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도상환수수료 등 금전적 손해를 본 임직원도 많았다.

      #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지수를 추종하는 주식형 펀드로만 재테크를 한다. 펀드 판매사도 계열 금융사가 아닌 타사를 이용한다. 이 운용역의 배우자는 여윳돈을 모두 은행 적금에만 넣는다. 지난해 공모주 붐 당시 배우자가 공모주 청약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 운용역은 회사 컴플라이언스의 자문을 거친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해상충'에 대한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경계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규정이 복잡하고 모호해 '애매하면 하지 마라'라는 말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최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이해상충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드러난 사실은 이렇다. 존 리 대표의 아내가 2016년 온라인투자연계(P2P)금융업체에 2억원을 투자했다. 지분율은 6.57%다. 이 업체의 대표는 존 리 대표의 친구였다. 메리츠운용은 2018년 사모신탁펀드를 통해 모집한 60억원을 이 업체에 전액 투자했다. 이 펀드는 연평균 10% 이상의 이익을 시현했다. 금융감독원은 이 건과 관련,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메리츠자산운용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이 투자 건이 이해상충인지 여부를 두고 금융권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존 리 대표와 메리츠자산운용측은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회사는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이해관계인이 아니며, 투자 결정에 존 리 대표가 개입하지 않았고, 해당 펀드에 손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금융권 및 법조계의 시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84조에서 이해관계인의 범위를 '집합투자업자의 임직원과 배우자'로 한정한 것은 사실이다. '배우자가 투자한 법인'은 이해관계인이 아니다.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존 리 대표의 주장도 옳은 부분이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배우자가 투자한 법인을 단순 제3자로 볼 것인지, 이해관계인 거래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해당 조항 악용을 막기 위한 감독당국의 재량권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실질적인 투자 및 거래 구조를 보고 금융감독원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가 중요해졌다. 

      투자 결정에 존 리 대표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결국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로 판가름날 사안이다. 금융권에서는 중소형사인 메리츠자산운용이 금융그룹계열 대형 운용사보다는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면에서 체계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간 메리츠자산운용이 시스템보다는 존 리 대표의 '개인기'로 운영되왔다는 외부 평가가 적지 않은만큼,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증권가에서는 해당 회사의 대표가 존 리 대표의 오랜 친구라는 점을 들어 배우자의 명의를 빌린 차명 투자가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나오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아무도 손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은 도의상 하지 말았어야 하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는 까닭이다. 이를 두고 한 은행 관계자는 "수익이라는 결과만 중요하다면, 예컨데 회사 자금을 개인 계좌로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낸 뒤 이자까지 쳐서 이를 돌려놓으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운용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에 가깝다. 조그만 이슈도 이해상충이 되지 않을까 몸을 사리며 살아오던 금융권 종사자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존 리 대표가 재산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왜 이렇게 처신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정확한 조사 결과는 봐야 하지만, 상식선에서 자기가 운용하는 회사에서 (배우자가 투자한 회사에) 투자한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공은 금감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재가 주어질 지,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 수위일지 정해지려면 적어도 4~6개월은 걸릴 전망이다. 

      다만 이번 논란으로 메리츠자산운용의 핵심 경쟁력이던 존 리 대표의 위상과 신뢰도에는 상당한 타격이 있을 전망이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메리츠자산운용의 경쟁력이 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업계에 잇따랐다. 존 리 대표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핵심 운용역들, 이른바 '존 리 사단'은 이미 대부분 메리츠자산운용을 등졌다. '시니어 운용역이 나간 자리를 주니어로 채워 인건비만 아끼려 한다'는 소문도 이미 업계에 돌아다닌지 오래다.

      그 결과 2017년말 6조원이 넘던 운용자산(AUM,순자산 기준)도 반 토막 났다. 현재 메리츠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2조8000억여원에 불과하다. 올해에만 9000억원이 줄었다. 운용자산 감소율이 마이너스(-) 24%로, 같은 기간 업계 평균(-2.6%)의 9배에 달한다. AUM 1조원 이상 운용사 중 에셋플러스운용, 얼라이언스번스틴운용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감소율이다.

      다른 관계자는 "공모 펀드 시장 성장에 일부 공헌하신 부분이 있는 분인 건 인정하지만, 업계 평판이 썩 좋으신 분은 아니다"라며 "이번 건도 제보를 통해 금감원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아는데, 명성에 비해 수익률에 대한 책임감이나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민감도 등 부족한 부분이 곯아터진게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