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금리 공포에 시작된 증권업계 '건전성' 심판
입력 2022.06.22 07:00
    하반기 크레딧 뇌관에 '증권사' 요주의
    고금리·증시 침체에 실적 하락 불가피
    규모 커진 부동산 금융 '건전성' 도마에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등 불확실한 거시환경에 신용평가사와 금융당국이 ‘증권사’를 주목하고 있다. 증시 침체로 인한 이익감소와 더불어 국내외 부동산 경기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증권업계가 하반기 ‘금융사 건전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증권사에 불어올 찬바람은 실적에서 예고된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전 분기보다는 증가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넘게 감소했다. 지난해 대다수의 증권사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면서 ‘역기저 효과’도 있지만, 대내외 증시 부진과 금리 상승 여파로 인한 수탁 수수료와 자기매매 이익 등이 감소한 탓이 크다. 신평업계에서는 악화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증권사의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금리인상, 주가 하락 등 하반기 들어 증권사의 실적 하락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건전성을 주시하고 있다”며 “당국에서도 증권사를 주의깊게 보고 있는데, 10년 전 금리 상승기에 터진 저축은행 사태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화에서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어디선가 이슈가 터지면 부동산 금융 쪽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대내외 변동성의 영향이 아직 숫자로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금리 인상의 속도와 정도를 보면 향후 나타날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금리 수준은 10년 내 제일 높은 수준이고, 앞으로도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2010~2011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기준금리를 일시에 대폭 인하한 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12개월간 다섯 차례 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이 그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증권사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2010~2011년 기준금리 인상기에 증권, 캐피탈, 부동산신탁, 저축은행은 모두 순이익이 감소하거나 적자가 확대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증시 자금이 이탈하고 주가가 하락해 거래대금이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사의 건전성 이슈를 본격적으로 살피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022년 1분기 증권사 영업실적 분석’에서 “국내외 자본시장의 잠재 리스크 요인이 증권회사 등의 수익성 및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이익 성장세가 둔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권회사의 고위험자산 투자 확대도 지속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 ‘위험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신용평가사와 금융 당국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부동산 금융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부동산 PF에서 부실이 터졌다. 증권사의 부동산 PF는 2010년대 중반 부동산 붐을 기점으로 투자은행(IB) 부문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2017년 자기자본 확충으로 자금력이 높아진 초대형 증권사들은 저금리 환경에서 위험 자산 투자를 빠르게 늘려왔다. 

      당국 및 신평업계에선 국내 증권사가 규모에 비해 PF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해왔다.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 미매각 물량이 크게 늘었다. 초대형 8개사의 해외대체투자 익스포져(위험노출) 규모는 2021년 6월말 19조8000억원으로 자기자본 총계 대비 42.4% 수준이다. 같은 시기 기준 초대형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 건전성 저하 자산 비율은 12.9%에 이른다.

      이달 초 취임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부동산금융부터 챙겼다. 지난 9일, 금감원은 금융투자회사의 부동산 그림자금융 세부 현황 자료를 체계적으로 입수하기 위해 업무보고서를 신설했다. 금융회사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각별한 부동산 금융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1월 금감원은 메리츠증권과 하나금융투자의 부동산 PF 관리 미흡을 지적하고, 각 사에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을 통보한 바 있다. 

      16일에는 이 금감원장이 ‘리스크점검 회의’에서 최근 크게 늘어난 비은행업권 해외 대체투자 및 PF대출, 부동산 채무보증 등 부동산 익스포져의 손실발생 가능성에 대비하는 점검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주택 구입 하지마라”고 경고했듯,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의 한 오피스빌딩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수천억원을 대출해줬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손실을 낸 사례도 발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랜드마크 지역 자산은 괜찮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이제는 증권사 등이 늘려 온 비우량 해외부동산 투자 건에서 추가 부실 사례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금융평가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저금리를 누리던 시장이 서서히 오르는 금리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며 “결과는 가봐야 알겠지만, 고금리로 시장의 매수 여력이 약해지고 채무 불이행자가 늘어나면 금융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소형 증권사는 중·후순위로 들어간 딜(deal)도 많아서 문제가 생기면 손실이 크게 터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