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오더컷 루머나 신용물량 반대매매에도 속절없이 하락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본격 반영되며 약세장
곡물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 '피크아웃' 인갯속...변동성 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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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이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4조4000억원을 순매도했다. 20일엔 현선물 합계 1조원을 투매하며 해외 증시의 반등 분위기에 방심하고 있던 국내 증시를 뒤흔들었다. 외국인의 탓만은 아니었다. 국내 기관도 이 기간 2000억원대 순매도를 유지했다. 연기금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왜 국내 증시만 이러냐'는 분통이 증권가에서도 터져나왔다. 전문가들은 국내 통화정책과 경기침체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를 첫 손에 꼽는다. 여기에 환율, 신용물량 반대매매 등 주가에 악영향을 주는 대외 변수들이 몰리며 당분간 큰 변동성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란 분석이다.
코스피지수는 6월들어 20일까지 294.87포인트, 11% 하락했다. 대부분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락 바텀'(단단한 바닥)이라고 장담하던 2500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2500선이 무너진 이후 이들은 급히 코스피 연간 하단 전망을 2500~2600선에서 2300~2400선으로 변경했다.
최근 국내 증시의 특징은 해외 주요국 증시와 디커플링(탈 동조화)됐다는 점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75bp) 올린 지난 16일 이후, 해외 주요국 증시는 단기적인 변동성을 거쳐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내 증시는 17일에 이어 20일에도 '나홀로 하락'을 거듭했다. 심지어 21일 일본과 대만 지수가 일제히 1% 이상 반등을 보이는 와중에도 보합세를 지속했다.
국내 통화정책 이슈가 부각되면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7월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이나 0.25%포인트(25bp) 인상이 유력했다. 지금은 50bp를 인상하는 이른바 '빅스텝' 가능성이 부각하고 있다.
이는 시장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점검회의에서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하자 증시는 물론 채권시장도 요동쳤다. 이후 이 총재가 "빅스텝을 물가만 보고 결정하지 않겠다"고 해명하자 시장은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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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플레이션은 가격이 오르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특히 부족한 재고에 따른 것이니만큼 가격을 잡으려면 수요를 줄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 연준은 이쪽 방향으로 갈 것임을 확실히 한 상태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FOMC에서 비효율적이더라도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겠다는 점을 확실히 했는데, 이는 긴축을 통해 수요를 죽이겠다는 얘기"라며 "'미리 긴축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한국은행이 '경기침체를 통한 수요 파괴'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때 아닌 반도체 오더컷(주문 축소) 루머도 작용하고 있다. 이 반도체 오더컷 루머는 지난 5월 말에도 한 차례 시장을 뒤흔들었다.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주요 서버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주문을 대폭 축소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이 두 기업의 협력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재료다.
이 루머는 당시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는 20일 반도체 장비기업 ASML에 대해 1조원 이상 규모의 공매도 공격이 있었으며, 그 여파가 한국 및 대만의 반도체 기업에까지 미쳤다는 소문이 확산하기도 했다. 다만 이날 유럽 증시에서 ASML은 전 거래일 대비 1.8% 상승 마감하며 큰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증시 급락으로 인해 신용물량이 청산되며 변동성의 골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국내 증시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해 1월 이후 처음 20조원 아래로 내려왔다. 일일거래대금이 10조원을 밑도는 가운데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이 10%대로 치솟으며 '하락이 하락을 초래하는' 장세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국내 증시가 우려나 루머, 반대매매 물량 따위에도 크게 흔들리는 배경은 결국 글로벌 매크로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5월초 글로벌 증시 하락엔 '인플레이션 우려'만 작용했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12개월 내 미국 경제 침체 확률은 44%로나타났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38%, 코로나19 대확산 직전인 26%보다도 크게 높은 수치다.
6월 들어 치솟던 국제 유가가 한달 전 수준으로 돌아온 배경 역시 경기 침체 가능성이라는 지적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 선물 가격은 현재 배럴당 110달러 선으로, 이달 초 고점이었던 122달러 대비 10%가량 하락했다. 다만 유가 하락은 아직 경계 심리에 따른 것으로, 본격적인 하락 추세라고 보기엔 멀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유가와 달리 곡물 가격은 낮아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며 국제 곡물 가격은 지난 4월 이후 급등세를 지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주산지인 소맥(밀) 선물 가격은 2008년 이후 처음 부셸당 1000달러를 넘어섰고, 최근엔 대두(콩) 선물 가격이 2012년 8월 이후 10년만에 처음 부셸당 1700달러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당초 2분기 중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하고, 3분기부턴 증시가 안도랠리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던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물가 고점 시점과 경기 침체 가능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반기 중 증시가 반등하더라도 '베어 마켓 랠리'(약세장 중 10% 안팎의 짧은 반등)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올해 1월엔 연준이 돈을 계속 풀어야 하니 기준금리를 덜 올려야 시장이 환호했는데, 지금은 재난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더 올려야 환호할 지경이 됐다"며 "높은 기준금리는 경기 침체와 대출 부실을 부를 수밖에 없고, 최근 증시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