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몸값 재는 상장 예정 기업들...눈 높이 낮추기 '어렵네'
입력 2022.06.23 07:00
    카카오모빌리티·SK에코·11번가 등 상장 준비기업 다수
    급락하는 주식장에도 FI·계열사 눈치 탓에 밸류 조정 어려워
    발행사·FI 사이에 낀 주관사들 기업가치 조정에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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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증시가 급락하며 국내 공모주 시장 역시 급격히 꺾이고 있지만, 여전히 상장 예비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장 상장 성공만 따진다면 몸값을 낮추거나 공모규모를 줄여야 하는데 각종 이해관계에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다. 발행사의 밸류 욕심을 낮추기 어려운 데다 재무적투자자(FI)의 입김도 무시하기 어렵다. 기업집단 자회사인 경우 모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계열사 간 경쟁 구도 역시 부담이라는 평이다. 

      발행사와 FI, SI(전략적 투자자) 사이에 낀 주관사들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꾸라진 시장 상황에 밸류를 낮춰야 하지만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국내 최대 사모펀드(PE) MBK파트너스가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매수를 두고 최대주주인 카카오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금융권에선 카카오모빌리티가 원하는 몸값을 받기는 어렵다는 관전평이 많다. 

      그간 카카오모빌리티는 IPO(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에 힘써왔지만 어려움을 겪어 왔다. 악화된 공모주 시장 상황에 재무적 안정성을 증명하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직전 투자 유치 당시 약 8.5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이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최근 ‘플랫폼’ 업종에 대한 투자자의 반응이 차갑게 식은 데다 회사 측이 지향하는 도심 교통 플랫폼을 위해선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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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그럼에도 카카오모빌리티가 스스로 원하는 기업가치 수준은 여전히 높다는 의견이다. 작년 말 주관사 선정 프레젠테이션(PT) 당시 할인 전 기준 약 25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제시한 증권사가 주관사로 포함된 점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상장 강행 시 다소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당시 10조원대 중반의 기업가치를 제시한 후보는 '핀잔'을 들었을 정도다.

      작년 상장한 카카오페이나 카카오뱅크의 상장 당시 기업가치도 카카오모빌리티로서는 부담이다. 당시 카카오페이는 공모가 기준 약 20조원, 카카오페이는 12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10조원 미만의 기업가치로 상장을 강행할 경우 상당히 체면을 구기는 셈이 된다.

      대기업에 속한 회사의 경우 모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기업가치를 낮추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IPO를 공식화하며 약 10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잡아뒀다. 시장 상황이 악화했다고 해서 이미 외부에 공표한 밸류에이션을 줄이기엔 실무진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올해 초부터 싱가포르 1위 전기·전자 폐기물기업 테스, 청주 폐기물 회사 제이에이그린, 말레이시아 폐기물처리회사 센바이로 등 크고 작은 인수합병에 나서는 점도 향후 몸값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11번가 역시 올해 초 하형일 대표가 “아마존과 협력으로 기업가치 증대를 인정 받겠다”라고 공언해둔 상태다. 모회사인 SK스퀘어는 2025년까지 순자산가치를 당시의 약 3배인 75조원 규모로 성장시킬 목표를 잡아뒀다. 앞서 SK쉴더스·원스토어 등의 잇단 상장 실패에 11번가마저 상장 밸류를 크게 낮춘다면 모회사 전략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욕심을 내려놓고 상장 성공을 위해 공모가를 낮추려는 기업들도 없지 않다. 레이저쎌이나 범한퓨얼셀, 보로노이 등은 직전 투자 단가보다 확정 공모가가 낮다. 다만 대부분 공모규모가 1000억원 미만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이다. 조 단위 덩치의 상장 예정 기업들의 경우 FI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파격적으로 공모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다. 공모규모가 클수록 수익률에 대한 FI의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미 한 차례 상장을 시도했다가 FI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공모가 조정에 실패한 사례도 여럿 있다. 맥쿼리PE, 대신PE 등을 FI로 둔 SK쉴더스와 SKS PE·키움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원스토어 역시 공모가를 두고 FI와 이견을 빚었다. 특히 원스토어는 공모가 확정 직전까지 FI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하향 조정에 대한 동의를 얻지 못했다. 상장을 앞둔 쏘카 역시 최종 공모가 범위를 두고 FI인 국내 사모펀드(PE) IMMPE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에 상장 주관사들은 발행사뿐 아니라 다수의 FI, 한국거래소까지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전언이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공모가를 낮춰야 하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봐야할지 애매한 탓이다.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SK쉴더스는 맥쿼리PE가 투자할 당시 단가보다는 공모가가 높아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원스토어 역시 공모가 2만5000원으로 논의될 당시 FI의 반대에 직면했다”라며 “장이 안 좋아지니 주관사, 발행사, 거래소, 투자자들의 입장이 각각 달라지며 복잡한 이해관계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