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폭락장에 하방 막힌 중위험 상품 인기
‘폭탄돌리기’라는 지적도...옥석가리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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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그간 자취를 감췄던 공모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이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급격한 주식 하락세에 개인 투자자들은 최소 안전장치가 있는 중위험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자금조달이 시급한 발행사로서도 공모 방식의 메자닌 발행은 유리한 지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일반 공모로 발행하게 되면 금리나 만기 조건을 다소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다. 다만 2010년 전후 벌어졌던 '한계기업 폭탄돌리기'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상당하다.
최근 HLB생명과학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일반 공모청약에 약 4조원이 몰렸다. 모집금액 약 407억3300만원과 비교해 약 100배에 이르는 규모다. 최종 경쟁률은 100.85대 1이다. 이 회사는 앞서 약 1000억원 규모의 구주주 대상 공모 BW를 모집했고 해당 과정에서 약 59.2%의 청약율을 기록했다.
곧 청약이 예정된 CJ CGV 전환사채(CB) 일반 공모도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는 7월 초 전환가액 확정 이후 구주주 대상, 일반 공모 청약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엔데믹(코로나의 풍토병화)과 맞물린 리오프닝 테마에 묶이며 주가 상승 기대감이 더해지고 있다.
그동안 ‘기관투자자 전유물’로 꼽혔던 메자닌 상품이 일반 투자자들 영역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주식시장 분위기에 개인투자자들도 ‘중위험’ 상품으로 꼽히는 메자닌 수요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풀이된다.
BW나 CB의 경우 기본적으론 채권의 성격을 지녀 사실상 원금 보장이 되는 상품에 가깝다. BW는 발행사의 워런트(신주인수권)과 회사채를 각각 따로 보유하는 형태다. 워런트를 행사하더라도 채권은 그대로 남는다. 반면 CB는 일정 금액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두 메자닌 모두 설령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상환을 받을 수 있어 안전한 상품으로 꼽힌다. 발행회사의 디폴트(채무불이행)만 제외하면 리스크 요인이 적은 셈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CJ CGV와 같은 대기업 계열사의 CB는 디폴트 가능성도 극히 낮아 안전성이 높은 편”이라며 “주가가 떨어져도 상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자닌은 대부분 사모 형태로 많이 발행되는데 간혹 공모로 나온 메자닌의 경우 현재와 같은 주식 폭락장에서 개인들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간 리픽싱 관련 바뀐 규정이 적용되면서 메자닌 발행 자체가 줄어들었고, 그중에서도 공모 발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통상 ‘중위험 중수익’을 선호하는 기관투자자가 많아 증권사 IB들도 굳이 일반 공모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최근 사모 메자닌의 발행 조건 난이도가 다소 오르며 증권사 IB들도 공모 발행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예전 같으면 사모로 발행할 물량들도 이왕이면 공모 방식을 추천한다는 전언이다.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 시기에 일반 공모 청약을 통해 만기 등 발행사에 다소 유리한 조건을 부여할 수 있어서다.
한 증권사 IB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청약 시 실권이 날 가능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좋은데 일반 공모 청약은 구주주 청약에 이어 일반인 대상으로도 청약 기회를 부여한다”라며 “실권 물량이 적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좀 더 (발행사에) 유리한 조건이더라도 잔액 인수에 응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관들이 외면하는 투자 상품에 개인투자자들이 선뜻 투자했다가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상 메자닌은 발행 결정 당시의 주가를 기준으로 전환가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폭락장 상황에서 메자닌 발행을 감행하는 기업이 많지는 않다. 이왕이면 조금 더 주가가 올랐을 때 발행하는 것이 향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재무상황이 썩 좋지 못하거나 외부 자금 조달이 시급한 기업들 위주로 메자닌 발행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발행사의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최근 공모 BW 발행에 나선 한창은 금융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수개월 째 자금 조달이 지연되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았다. 당시 STX 등 한계기업들이 잇따라 BW를 발행하며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그룹 해체 과정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손실을 감내해야 하기도 했다. 당시 이를 두고 '한계기업 폭탄돌리기'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메자닌 발행에 나선 기업들 역시 재무적으로 여유가 없는 기업이 많은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평이 적지 않다.
메자닌으로 이한 물량부담 역시 증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CJ CGV는 그간 자금조달 수요가 높았던 만큼 과거 발행된 CB 규모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지난해와 올해 약 7000억원 가량의 CB를 발행한 상태다. 해당 물량이 모두 주식으로 바뀐다면 발행주식수는 지금보다 약 50% 이상 증가한다. 전환 수요가 몰릴수록 주가 희석에 대한 리스크를 배제하기 어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