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원칙'도 무너진 디파이 시장…지속 가능성 의문
입력 2022.06.24 07:00
    취재노트
    솔라나 기반 디파이 솔렌드, ‘고래’ 지갑 통제권 확보 나섰다가 철회
    업계 “탈중앙화 원칙 벗어나” 내 비판…딜레마에 빠진 디파이 시장
    “2008년 리먼과 유사하다” 코인 상승장에 지속 가능한 디파이
    하락 국면에 접어든 가상자산 시장, 연이은 붕괴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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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인을 토대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서비스 시장에 위태로운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자, 디파이에 넣어둔 자금이 빠르게 회수되면서 연이은 뱅크런(코인투자자들의 대규모 이탈 사건)까지 발생하는 중이다.

      이 가운데 부실 발생을 우려한 솔라나 기반 대출 플랫폼인 솔렌드가 대규모 투자자인 고래의 지갑에 개발사가 직접 개입하기로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솔렌드 개발사인 솔렌드랩스가 고래 계정에 임시로 접근해 청산이 장외거래(OTC) 시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골자다. 업계에서는 개발사가 사용자 지갑에 접근하는 행위 자체가 디파이의 기본 원칙인 탈중앙화된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솔렌드가 탈중앙화 원칙을 깨면서 제안을 한 이유는 한 개의 고래 지갑이 치명적인 청산 위험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솔렌드는 “솔라나의 가격이 낮아지면 디파이 청산이 발생한다”며 “고래들이 연쇄적으로 청산하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체 네트워크 블록체인을 지키기 위해선 개입이 필요했으나, 탈중앙화라는 원칙을 깨부수며 디파이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결국 솔렌드랩스는 기존 계획을 철회했지만, 디파이 시장의 구조적인 취약점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디파이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파이 개발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전문성이 있을지라도 금융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디파이 서비스는 투자자가 코인을 예치하면 이자를 20~30%에서 300%까지 주는 구조로 짜였다. 

      이는 현실적으로 기존 금융 서비스의 예대 마진 구조로는 나올 수 없다. 실상은 이랬다. 예치금을 운용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체 코인을 추가로 발행해 주거나, 예치금을 이자가 더 높은(그만큼 더 위험한) 디파이 서비스에 예치해서 이자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코인 시장의 상승장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가능했던 구조인 셈이다.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디파이 시장의 연이은 붕괴는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현재 디파이 시장의 붕괴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비슷한 구조”라며 “예치금을 파생상품에 넣고 또 그걸 다시 파생상품에 넣고 하다 보니 전체 규모가 백배 천배로 늘어나면서 시장에 거품이 꼈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디파이 생태계의 붕괴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들이 크게 급락했는데, 바닥이 어딘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장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완벽하게 탈중앙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기술 개발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블록체인에 계약 조건을 기록하고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계약이 실행되게 하는 프로그램)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가 보안 이슈를 발생할 정도로 취약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는 디파이 시장의 혼란은 금융에서 ‘탈중앙화’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디파이 개발사들도 근본적으로 탈중앙화를 지향하지만, 그 구조는 집중화된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20일 보고서를 통해 "탈중앙화된 의사결정을 위해 발행된 거버넌스 토큰을 디파이 개발자를 비롯한 소수 시장참여자가 상당 부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골드만삭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전통 금융업자들이 디파이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디파이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은 성장할 수 있겠지만 디파이 업계는 다시 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전통 금융시장의 중앙화된 금융기관이 디파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탈중앙화’에 위배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업에서 탈중앙화란 곧 무법을 뜻한다”고 말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도 “디파이의 ‘탈중앙화’라는 단어가 다소 기만적일 수 있다”며 “중앙집중형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디파이’라는 이름을 붙인 프로젝트를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보안성 등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 낙관론으로 점쳐졌던 가상자산 시장의 거품이 걷힌 만큼, 금융의 탈중앙화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따져볼 시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