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조치로 자본확충 부담은 사라져
IFRS17 도입되면 금리 인상에도 큰 부담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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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상승기 보험사 채권 평가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보험업계의 표정은 생각보다 조급하지 않다. 금융당국에 이어 한국은행까지도 경고하고 나선 것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 도입되는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17의 영향으로 자본잠식 등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에는 IFRS17 때문에 보험업계에 긴 겨울이 올 것이라는 부정적 예상이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보험사가 IFRS17 덕을 톡톡히 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가속화하면 증권사와 보험사의 유가증권 평가손이 급격하게 확대될 수 있다.
한은이 추정한 2021년 말 현재 증권사와 보험사의 시가평가 대상 채권 규모는 각각 244조1000억원과 336조8000억원이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100~200bp 상승하는 경우 증권사는 1조6000억원~3조3000억원, 보험사는 36조~72조원의 채권 평가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숫자만 들었을때는 보험사 상당수가 자본잠식에 빠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은 인지하고 현행 RBC(지급여력비율) 산식 개선을 통해서 보험사의 부담을 덜어줬다. 해당 조치로 대다수의 RBC비율은 감독원 권고 사항인 150% 이상으로 오르게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RBC 산식 조정으로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이 있더라도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에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RBC 산식 조정이 일시적인 미봉책이라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IFRS17 도입은 채권 평가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IFRS17으로 회계 제도가 변경되면 부채를 시가평가 하게 된다. 현행은 자산만 시가평가를 하고 있다. 자산과 부채 모두를 시가 평가하게 되면 금리 상승기에 자산에선 대규모 채권 평가손이 나지만 반면 부채를 시가평가하게 되면 규모가 줄어들어 서로 상쇄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면 보험사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다”라며 “IFRS17 도입이 안됐으면 회계적인 이슈로 자본확충에 비상이 걸렸겠지만 당장 내년에 IFRS17이 도입되면서 이런 우려는 기우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이런 상황은 이전의 걱정과는 정반대의 일이다.
IFRS17가 도입 논의만 10여년이 걸렸다. 처음 도입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보험사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채를 시가평가하게 되면 막대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로 금리’가 거론되던 상황이었고, 많게는 수십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해당 이슈로 IFRS17 도입 시점이 계속 늦춰지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양상도 벌어졌다. 금융위는 업계 편에서 IFRS17 도입에 신중한 모드였다면, 금감원은 회계 투명성을 이유로 IFRS17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자들의 강한 요구 등으로 IFRS17이 도입되게 되었고, 이 마당에 금리까지 상승하면서 IFRS17이 연착륙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감독당국에서도 IFRS17 도입이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추진했던 정책이 궁극적으로 업계 안정과 회계 투명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IFRS1 도입과 발맞춰 준비된 신지급여력제도(킥스)로 인해서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부담이 크게 줄어 들었다”라며 “강한 업계 반발 끝에 도입되는 IFRS17이 오히려 업계의 환영을 받는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