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발행 절반으로 '뚝'…침체된 시장 상황 이어져
발행사는 '고금리', 주관사는 '미매각 떠안기' 리스크
KB證 상반기 선두지켜…순위 상관없이 '올해 장사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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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올해 상반기 DCM 주관 리그테이블에서 ‘순위’ 자체는 의미가 없게 됐다. 대형사와 중형사 너나 할 것 없이 ‘올해 장사’ 걱정을 하고 있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크게 오른 조달 금리에 직접 발행보다는 은행 창구를 찾고 있다. 금리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관사도, 발행사도 하반기 계획 세우기에 고민이 많은 분위기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2년 상반기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증권사가 주관을 맡은 무보증 공모회사채(일괄신고 제외)는 34조4848억원이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조달이 이어진 지난해 상반기(43조1512억원)와 비교하면 발행 규모가 크게 줄었다.
한 대형 증권사 IB부문 임원은 “회사채 발행이 전년 동기에 비해 거의 반정도 줄면서 올해 DCM 부문은 수익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IB부문에서 회사채가 전반적으로 ‘돈이 되는’ 부분은 아니긴 하지만, 빠진 부분을 고금리 대출이나 증자, 메자닌, 에쿼티 투자 등 다른 딜을 영업하며 맞춰가고 있다. 기업들은 어쨌든 자금이 필요한데, 증권사 입장에서도 회사채 발행은 미매각 떠안을 가능성이 많아지니까 리스크(위험)는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크레딧 시장으로 국한하면 한국전력공사의 한전채 발행 증가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AAA급의 부도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인 한전채가 4% 중반대 금리로 발행되면서 크레딧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였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는 외면 받았다.
투심 회복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발행에 나서도 미매각이 속출했다. 미매각 물량을 떠안아야 하는 주관사들의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2분기 미매각을 보인 공모채는 NS쇼핑, 삼척블루파워, 코리안리, 흥국화재해상보험, 한화생명, 푸본현대생명 등이다. 한화생명(AA)은 이달 공모 후순위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에 나섰는데, 목표 금액은 3000억원이었지만 293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미매각 물량은 주관사와 인수단이 떠안게 된다. 한화생명 공모채 대표주관사는 KB증권과 NH투자증권이며 인수단으로 한화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참여했다.
앞서 3월 여천 NCC도 폭발사고로 ESG 이슈가 터지며 기관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 전량 미매각을 낸 바 있다. 당시 대표주관을 맡은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과 한화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신한금융투자, 유안타증권, 한양증권, DB금융투자 등 인수단이 계약에 따라 물량을 사들였다.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자 자금 조달 계획을 짜는 기업들은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금리 인상이 예견되면서 지난해부터 선제적 ‘곳간 쌓기’에 나서긴 했지만, 자금 조달 수요는 여전히 높다. 회사채 금리가 은행 대출금리보다 높아지자 은행 대출을 찾는 기업들도 늘었다. 지난 5월 은행채 발행 규모는 월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대출이 급격히 늘면서 은행들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은행채 발행을 늘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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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시장에서 우위를 갖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들은 험난한 시장 상황에서도 발행을 이어갔다. 다수의 기업들이 발행을 ‘하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KT, SK에너지, 포스코케미칼, 현대백화점 등 시장금리가 급등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대기업들의 발행이 주목받았다.
KT는 이달 21일 2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9300억원 규모의 주문이 들어오며 높은 기관 투심을 확인했다. 한 채권시장 관게자는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낮은 금리 조건을 제시해줄 증권사, 보험사 및 금융지주들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점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투자로 자금이 필요한 유통사들의 발행도 눈에 띈다. 4월 이마트가 33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5월 GS리테일(2500억원)과 현대백화점(2800억원)이 발행에 나섰다. 우량한 등급을 보유한 대기업인 만큼 발행에는 성공했지만, 회사채 호황기와 비교하면 양호한 투심을 보였단 평이다. 이마트도 수요예측에 흥행하면 목표치의 두배인 6000억원까지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기존 목표치인 3000억원에서 300억원 증액하는 데 그쳤다.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를 앞둔 건설사들은 특히 고민이 깊다. 4%대에 이르는 높은 금리도 부담이지만, 시장의 투심도 냉랭한 탓이다. 건설업이 하강국면에 접어들었고, 아직 시장에서 HDC현대산업개발 사태 여파가 이어지며 투자자들은 여전히 건설사 투자를 회피하고 있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7월 각각 30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지만, 차환(재발행 후 기존 채권 상환)을 하지 않고 양사 모두 현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SK에코플랜트, 태영건설 등도 이달 및 다음달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다. 이 중 SK에코플랜트는 차환용 신규 채권을 발행했고, 대우건설은 상환을, 포스코건설과 태영건설은 발행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침체된 시장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금리 인상폭이 줄어들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주관사들도 발행사에 채권시장이 다소 안정되면, 하반기에는 발행을 하는 쪽으로 조언하고 있다. 지금 시장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내년 상황도 예측이 어려우니 가능하다면 발행에 나서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2분기 전체 채권발행시장(DCM) 주관은 KB 증권이 1분기에 이어 선두를 지켰다. 2위에 NH증권이, 3위에 SK증권이 올랐다. SK증권은 다수의 SK계열사 관련 발행 주관에 참여했다. 전년 동기 순위권 밖이던 한양증권이 8위에 올랐고, 미래에셋증권은 7위에서 10위로 떨어졌다.
ECM, M&A 등 순위 변동이 잦은 다른 자본시장 부문에 비해 DCM 부문은 ‘정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10여년간 KB증권이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다. 다만 회사채 시장 전반이 쪼그라들면서 ‘순위’에 상관없이 주관사들의 고민은 깊다고 전해진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KB증권이 DCM 부문에서 1위를 오래 지켜온 만큼, 안그래도 시장이 안좋은데 ‘내가 있을 때’ 아성이 깨지면 안된다는 담당 임원들의 부담도 상당할 것”이라며 “영원한 것은 없다보니 NH증권 등 경쟁자들이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