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미국 공장 건설 전면 재검토…비용 부담 줄었지만 통상문제 비화 우려도
입력 2022.07.01 07:00|수정 2022.07.01 16:56
    美 애리조나에 1.7兆 공장 신설 계획 재검토
    경영 환경 악화에 설비 증설 필요 없다 판단
    ‘잘한 판단’ 평가 많지만 미국 측 시선은 의문
    미운털 박힐까 우려도…회사는 “큰 문제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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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이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공장에 대한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대내외 경제 지표가 악화하며 배터리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고 당장 공장 건립에 들어갈 비용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판단했다. 위기 때 전략을 수정하는 유연성을 입증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선 투자를 기대했던 미국 정부와는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 아니냔 우려도 나오고 있다.

      LG엔솔은 최근 1조7000억원을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지으려던 배터리 공장 신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 공장에선 1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를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 생산할 계획이었는데 이는 적어도 3년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회사의 2025년 목표 생산능력이 500GWh인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 큰 타격은 아니지만 주가는 급락세다.

      LG그룹은 작년까지 LG전자의 사업 정리에, 올해부터는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사업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였다. 국내 계획이긴 하지만 5월말 그룹이 내놓은 106조원 투자 보따리에는 배터리 사업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 있었다. 한 달여 사이 배터리를 둘러싼 분위기가 달라지니 일각에선 회사가 지주사를 거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냔 시선도 일부 있었다.

      LG엔솔이 공장 신설을 보류한 것은 대내외 사업 환경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대형사를 제외하면 리비안, 루시드, 니콜라 등 신진 전기차 회사들은 차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공급을 늘려도 수요가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원·달러 환율과 시장금리 급등으로 우리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하기는 부담스럽다. 사업 확장에 미온적이던 삼성SDI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우리 배터리기업간 경쟁 부담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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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앞으로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상당 기간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기차 세금 혜택안 등이 포함된 BBB(Build Back Better) 법안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인플레이션 부담에 중국 배터리 관련 관세 인하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라 한국 기업의 부담이 크다.

      LG엔솔이 기존 계획을 다시 검토하는 데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올해 상장 시 조달한 자금이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늘어난 기존 계획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는 새 공장을 짓지 않아도 기존 계약 물량을 공급하는 데는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는 충격을 받았지만 내부적인 제어 시스템은 건전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걱정되는 면도 있다. 이미 부지를 다 사두고 현지 정부 지원 아래 추진하던 사업을 갑자기 틀겠다는 것이니 내부 일각에선 외교·통상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증설은 늦추고 충청북도 오창 공장은 증설하겠다는 것이라 한미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사업 확장은 미국 정부를 떼고 말하기 어렵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대전’은 미국 정부의 중재 아래 대타협이 이뤄졌다. 서로 다투느라 자국 자동차 산업에 영향이 가면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묵언의 엄포가 통했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리쇼어링(re-shoring) 기조에 맞춰 미국 현지 투자를 앞다퉈 늘렸었는데 LG엔솔이 이번에 다른 움직임을 보인 셈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이 정도 사안을 두고 반목하지는 않겠지만 기업이 통상 부담을 느끼게 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이 자국에 투자하기로 했다가 발을 뺐다면 어느 나라가 반기겠느냐”며 “괘씸죄에 걸리게 된다면 자국내 생산 배터리를 판매하는 것은 몰라도 해외에서 미국으로 들여오는 물량에 대해선 통상적인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주에서는 LG엔솔의 공장 설립을 반기며 ‘세계 첨단 배터리 생산 수도’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냈었다. 주지사까지 나서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을 거론했지만 현실화 시점은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양쪽 합의가 없었다면 LG엔솔이 투자를 재개하려 할 때 주정부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지고, 계약에 따라서는 추가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LG엔솔이 이번 결정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계약서를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 투자의 경우 계획대로 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를 물 수 있고 계약이 유연하게 돼 있다면 시기를 조율하거나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엔솔은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다른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고, 공장을 짓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라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엔솔 측은 미국 공장 건설 재검토에 대해 “지주와도 당연히 소통된 사항”이라며 “고객에 물량을 댈 다양한 방안이 있는데 굳이 미리 결정한 대로 단독공장에 투자할 필요가 없으니 다른 선택지도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현지 공장을 짓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일정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통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