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운용사 등 채권운용 손실 커…추가 매입 여력 적어
개인 투자자 관심은 높아져…공사채는 고금리에 안정성까지
다만 금리 변동성에 위험 우려도…"만기 등 꼼꼼히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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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그라든 기관들의 크레딧 채권 투자 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의 채권 투자 수요는 높아졌다. 금리 불확실성 속 미매각 부담, 운용 손실, 투심 저조 등으로 기관들의 채권 투심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및 암호화폐 등 다른 투자처가 매력을 잃으면서 비교적 안전하면서 ‘고금리’까지 갖춘 채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증권사나 운용사, 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의 채권 투자는 여전히 정체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보니 적어도 3분기까지는 수급이 불안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형 펀드 환매가 많이 나오면서 기관들이 채권을 매입할 여력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보험사들도 보유 채권의 평가 손실 자체가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추가 매수 여력이 높지 않고,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초대형 증권사들도 상반기 채권손실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대형 증권사 IB 관계자는 “운용사 등 주요 투자자들도 지갑을 닫으면서 어떤 조건이든 회사채는 투자자 찾기가 어렵다. 공모 회사채 기준 AA급은 어느 정도 수량이 소화가 되지만 A급은 발행 물량 자체도 없다”며 “증권사들은 이미 미매각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아 빨리 털어버려야 하는 문제도 있고, 채권 운용도 올 들어 계속 평가 손실이라 적자로 돌아선 지 오래고 규모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크레딧 관계자는 “지금 회사채를 살 수 있는 기관이 없다”며 “운용하는 곳들은 채권평가손 자체가 워낙 커져있는데 환매가 나와 돈이 들어와야 매입이 가능한 상황이다. 연금 정도가 여력이 있지만 시장 상황을 보고 기다렸다가 매입하려는 분위기다. 보험사들도 곧 제도나 규제 변화가 있기 때문에 크레딧을 사기보다는 무조건 듀레이션(채권 회수 기간)을 늘려 장기 국채 등을 사는 포지션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다수의 운용 기관들이 채권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반면 일부 공제회들은 하반기를 앞두고 채권 매입을 늘리는 투자 전략을 새우고 있다. 주식시장 불안정은 여전한데, 채권은 국고채뿐 아니라 우량 회사채도 고금리 매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채 뿐만 아니라 한전채 등 우량채들 금리가 4%대에 이르는 상황이라 장기물을 만기 보유로 매입하면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다
한 공제회 임원은 “(당사의 경우) 채권은 만기보유로 가져가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라 생각해서 고금리 채권들을 시장에 나오는 대로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투자자들이 다시 크레딧 투자를 늘리려면 통화 정책의 불확실성이 끝나고 금리가 안정화한 것을 확인한 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4분기 정도부터는 매수 수요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크레딧을 담는 분위기가 나오면 크레딧 시장 투심도 살아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현재로서는 회사채 유동성이 높지 않아 국공채 위주로 시장이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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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들이 떠난 채권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존재감은 커졌다. 개인 투자자에는 자산가 등을 포함한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 뿐만 아니라 서민금융기관도 포함된다. 대형 법인이 아닌 경우를 ‘개인투자자’로 묶기 때문에 지방 금고나 협동조합, 간이 농협 등의 지점도 포함된다.
개인의 채권 투자는 펀드를 통해 하거나 증권사 리테일에서 고금리를 노린 ‘BBB’급의 회사채나 항공사 채권에 투자하는 일부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신종자본증권, 회사채, 국공채, 신흥국 채권 등 관심 범위가 넓어졌다. 증권사들이 온라인으로도 채권 매매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하면서 펀드 등 간접 투자가 아닌 ‘직접’ 채권에 투자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개인의 경우 평가손 이슈가 없고 절세효과나 환차익 등을 노릴 수도 있다. 예로 국민주택증권은 금리가 3% 중후반대지만 표면금리는 1%대인데, 세금은 표면금리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절세 효과를 노릴 수도 있어 인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중소형 캐피탈사 관계자는 “회사채를 사고 싶다고 직접 관련 부서에 전화가 오기도 할 정도인데, 회사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고마운’ 상황이기도 하다”며 “예금이랑 비교했을때도 높은 수준 금리고, 내년에 금리가 떨어진다면 차익 매매를 노려볼 수도 있으니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의 채권 투자 관심은 올초부터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연초에는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수혜를 입은 브라질 채권의 인기가 높았다. 1분기에는 금융지주 등이 신종자본증권을 대량 발행하면서 개인 수요가 높았다. 4% 전후의 금리를 제공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본 적 없는’ 금리 수익이다. 이후 개인 투자자들은 높은 안전성에다 고금리까지 가진 한전채 등 우량 회사채로 눈을 돌렸다. 한전채는 시장에 물량이 넘치면서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있지만 개인들은 만기보유를 고려했을 때 4% 중반의 금리의 괜찮은 재테크 수단이 되는 셈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는 주가가 급락하면서 국채 등 장기채 수요가 급증했다. 국채는 최근 미 연준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연 4%로 수익률이 올라왔고, 이후 금리가 내려가도 채권값이 상승하니 매매 차익을 노릴 수도 있는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WM부문 관계자는 “기관들은 채권 매입이 어려운 시기지만, 개인들 입장에선 어쨌든 예금 중 일부를 디폴트 가능성이 적은 초우량한 금융지주회사의 신종자본증권이나 아주 우량한 공기업 채권에 투자하면 괜찮은 방법인 셈”이라며 “지금 배당수익보다 금리수익이 높을 정도로 금리 수익이 충분히 매력적이고,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수요는 주가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유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회사채는 우량채가 아닌 이상 수요가 높지는 않다. 특히 항공사 채권 등 코로나때 크게 타격을 입은 업종이나, 금리 인상기에 실적 영향이 큰 업종 등 신용등급 불안이 있는 기업들은 고금리여도 투자자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전채 등 공사채가 4% 금리를 보이는 시장이라 ‘굳이’ 낮은 등급의 회사채를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채권 투자를 향한 다소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시기가 안전 자산으로 관심이 쏠리는 시기다보니 개인들도 채권 투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아직 금리 불확실성이 커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다”며 “증권사들이 아마존, 애플 등 해외 회사채까지 모바일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등 채권 투자 영역이 넓어지고 있긴 하지만 금리 변동 폭이 크면 클수록 채권도 ‘무조건’ 안전하다고는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