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부서는 금리 직격탄…IB·부동산도 씁쓸한 상반기
반환점 돌았을 뿐인데…벌써 사직서·조직개편 등 흉흉
뾰족한 수 없지만…높아진 리스크 관리 벽까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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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은 작년만 해도 전에 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경기 악재가 이어지며 돈의 힘이 줄었고 증권사가 활약하는 모든 분야의 역동성이 떨어졌다. 이런 침체는 올해를 시작으로 향후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이제 갓 상반기를 보낸 증권사들은 벌써부터 연말 인사 칼바람을 우려하며 울적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졌다. 세계적으로 유동성 긴축 정책이 나왔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각국 정부는 금리 인상의 고삐를 더 죄고 있다. 역사상 유례 없는 금리 인상세에 시장은 얼어붙었다. 자본시장의 첨병인 증권사들은 실적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코스피는 지난 1년여간 내리막을 타 2300선 유지도 쉽지 않다. 상승 호재는 없고, 투자금 조달도 어려운 터라 국내 증시에 자금이 유입될 이유가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증권사들의 수탁수수료는 1조4597억원으로 1년 전(2조5216억원) 대비 1조원 이상 줄었다. 브로커리지 부서는 하반기 수익 감소폭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할 처지다.
주식자본시장(ECM)도 싸늘하다. IT·테크 기업을 시작으로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상장 철회 사례가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ECM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작년 상반기 실적 전체에 맞먹는 LG에너지솔루션 상장(IPO) 착시효과가 있다. 다른 대어들은 상장을 내년 이후로 미루거나, 공모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작년까지 전폭적 지지를 받던 IPO 부서는 올해 가장 먼저 조직 개편의 칼바람을 맞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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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관련 부서는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들은 채권 발행을 줄이거나 조달 금리가 싼 은행으로 고개를 돌렸다. 올해는 한국전력 채권이 높은 금리로 유동성을 흡수하며 시장을 왜곡시켰다. 투자자들은 기다리면 더 싸질 게 뻔한 채권을 미리 사지 않았다. 상반기 채권자본시장(DCM) 규모는 작년보다 20% 가까이 축소됐고, 증권사가 챙길 수수료 수입도 줄었다.
채권운용 부서의 타격이 가장 크다. 올해 1분기 증권사 채권관련손실은 1조3652억원으로 작년 동기(4196억원 이익) 대비 1조8000억원 가까이 악화했다. 금리 급등에 속수무책이었다. 국채 선물을 팔고 차후 더 싸진 국채를 사서 갚는 식의 금리 상승기 위험 관리 전략도 큰 효과가 없었다.
한 대형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올해 내내 손실 폭이 커질 것”이라며 “1분기에만 1000억원대 채권평가손실을 낸 한 증권사 채권담당 임원은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1분기 IB(투자은행)부문수수료는 전년보다 30%가량 늘었다. 나홀로 호황을 누렸다기 보다 작년에 진행된 거래들의 ‘수금’이 올해 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M&A는 올해 상반기 계약 건수와 거래 규모가 작년 상반기보다 줄었다. 한국맥도날드, 쌍용건설 등 M&A에 관여하며 분주한 미래에셋증권 같은 곳도 있지만 다른 국내 증권사들은 조용한 분위기다.
증권사는 위험가중치 높고 자금이 오래 묶이는 사모펀드(PEF) 출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리 상승기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은 늘었지만 진짜 돈이 될 신규 거래는 찾기 쉽지 않다. ‘낮은 금리’ 조건으로 따낸 거래는 백방으로 뛰어도 물량을 받아줄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금이 묶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수금융 부서에 대한 인사 평가는 박해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의 주요 먹거리였던 부동산 투자는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침체다. 투심 위축, 유동성 긴축, 자산 가치 하락 등 악재가 모두 몰려 있다. 1분기 부동산 강자 메리츠증권이 ‘깜짝 1위’를 했지만 연말까지 이를 지킬지 의문이다.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금융(PF) 부실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해외 부동산 투자 관련 부실이 금리 인상과 맞물리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리츠(Reits) 주가는 하락하고 부동산 PF 미매각도 많아 주요 증권사 부동산 담당 임원들이 물갈이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증권사 전체가 부담을 느낄 상황이다. 시장 좋고 돈 잘 벌 때면 모를까 이런 하락장에선 성과급은 적어도 안정적인 은행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돈 안 버는 관리 부서가 부럽다는 자조가 나온다. 궁여지책으로 올해 사명에서 ‘금융투자’를 떼고 다시 '증권’으로 돌아가는 곳도 있다.
임기를 따져야 하는 수장들은 금융지주 내 이익 기여도가 줄어드는 것이 부담스럽다. 당장 현금화 할 자산이 있는 증권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임원들을 다그치는 외엔 방도가 없다. 중역 회의에선 거래를 놓친 임원을 공개 질책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정신과를 찾는 직원들이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증권사 입장에선 있는 자원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이제는 리스크 관리의 장벽이 높다. 리스크 관리 부서는 돈 벌 길을 막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는 모든 투자 거래의 생사여탈권을 쥔 분위기다.
또 다른 증권사 투자부서 직원은 “요즘 리스크 부서에서 하던 업무를 정리해 보내달라는 요청이 크게 늘었다”며 “신중하자는 것은 알겠지만 일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리스크 관리까지 엄격해지니 영업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