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하던 것도 중단, 새로운 것은 미뤄"
금리 충격에 비용 급증…사업성 안나와
"한동안 어렵다" 조정기 온 부동산 PF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시장 냉각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부동산 금융 시장도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에서도 심사 건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금리 인상과 함께 가파르게 오른 비용에 대다수의 부동산 PF들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다. 시장에서는 지난 10년 간 호황기를 누린 부동산 PF시장이 변곡점에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NICE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의 부동산 PF 사업성 심사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 부동산 PF의 경우 통상 신평사에서 은행 대출 심사에 앞서 대출 상환 가능성, 위험(리스크) 검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최근 새로운 PF 건이 없다. 금리가 너무 올라 비용이 크게 올랐고 분양 수요도 받쳐주지 않아서 사업성이 안나와 심사를 거절하는 건이 많다. 금융기관에서도 심사 통과가 안되는 건이 다수다”라며 “진행되는 현장에서도 자재가격 외에도 인건비 등 공사비가 크게 올라 애를 먹고 있다. 신규 사업을 하려고 하면 수도권은 토지비가 너무 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웬만하면 사업을 재설계 해서 가져오거나, 진행을 중단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 진행하는 곳들은 ‘굳이 왜?’ 의심한다”라며 “5월 중순부터 하강 국면이었고 6월 중순부터는 실제로 시장 냉각이 현실화했다. 국내 부동산 PF는 두어달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
대부분의 자금을 빌려 진행하는 부동산 PF는 금리 상승 충격을 그만큼 크게 받는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부동산 사업 비용도 빠르게 올랐다. 아파트 등 전형적인 부동산 PF들이 가장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동산 PF의 경우 연초 4% 예상 대비 현재 5~6%대 금리가 나오니 사업주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고금리에 사업 비용이 급증했는데 시장 수요는 떨어지니 수익성이 맞지 않아 웬만한 사업은 추진이 어렵다. 진행 중인 사업도 중단되고, 준비하던 사업들도 미루는 일이 많아졌다.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금융 비용이 오르면서 토지비는 덩달아 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의 경우 평당 가격이 1억~2억원 수준까지 올랐다. 토지비가 오르면서 ‘고급 오피스텔’ 등 고급화 전략을 써야 그나마 사업성이 나왔는데, 이전에는 시장에 자금력이 풍부해 고급 부동산 수요가 높았지만 지금은 꺾인 분위기다. ‘코인 갑부’ 등 젊은 층의 수요 이탈도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토지비는 한번 오르면 내려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장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수요 감소도 체감되고 있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전국에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5월 기준 수도권 미분양 물량이 전달 대비 2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청약 불패’ 지역인 서울에서도 미분양 물량이 한 달 새 두 배가량 늘어나면서 대구 등 지방부터 시작한 미분양 사태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상치 않은 시장 분위기에 업계 내부 우려도 높다. 아직까지 큰 사고가 난 것은 없지만, 갑자기 터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조심하는 분위기다. 일부 관계자들은 “일부 롤오버(차환) 사고가 났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기관들이 보유한 프로젝트 중 사고가 날만한 곳들이 있다”며 ‘잠재 신호’가 보인다고 경고한다. 이슈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주체가 물밑에서 협의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불안한 ‘신호’가 느껴지면서 금융당국도 선제 경고에 나섰다.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카드사 및 캐피털사 최고경영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라 PF대출에 대한 사업성 평가를 실시하겠다”며 점검을 예고했다. 금감원은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업체(여전사)가 취급한 모든 PF대출에 대한 사업성을 평가한 뒤 리스크가 높은 대출에 대해서는 충당금을 더 쌓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
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용평가 관련 부서들도 ‘다른 먹거리’ 모색에 나서는 분위기다. 일반 부동산 PF뿐 아니라 인수금융, 인프라 금융 등 상대적으로 경기에 덜 민감한 사업들도 영향은 불가피하다. 연초와 비교하면 인수금융도 금리가 다소 올랐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 발행이 상반기에 많이 줄었는데, 그나마 사업성 평가는 작년 일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꺾일 것으로 본다”며 “부동산 펀드 평가 업무가 있긴 하지만 양질의 건들은 아니라 사고 위험도 있고, 만기 연장이나 시간벌기용 평가가 다수”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호황을 누린 부동산 PF 사업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지난 10년간 국내 부동산금융 시장은 아파트 등 주거시설 신축자금 대출 중심의 PF 호황을 누렸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부동산 PF 관련 사업은 대부분 은행들이 참여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PF에서 대거 빠지면서 증권사가 대표적인 주관 자리를 차지해왔다. 지난해 일부 증권사는 ‘사상 최대’ PF 사업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시장이 너무 탐욕적으로 확장해 간 점도 있어서 한번쯤 겪어야 할 조정이 온 것”이라며 “금리를 이길 수는 없다. 관련 주체들은 이제 돈을 어디서 벌 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