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직후 기업가치 반토막 사례도
PI첨단소재 매각가 比 -60%…엔켐 RCPS도 절반
'소부장' 테마도 위태…"기업 스스로 눈높이 낮출 때"
드라이파우더 넉넉한 투자자들은 '관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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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당분간 재무적투자자(FI)들의 '개점 휴업' 상태는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자자(LP) 전반이 지갑 열기를 꺼리는 데다 시장 혼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시점에 구태여 투자에 나설 이유가 없단 이유에서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대체투자 시장의 밸류에이션 하락 등으로 경영권 인수를 목표로 한 M&A는 물론 소수지분과 메자닌 투자는 이미 투자자 우위 시장이 됐다. 전반적인 기업 가치의 하락이 가시화 한 시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낮은 기업 가치로 투자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전망에 당분간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탈(VC), 자산운용사들 등 주요 FI들의 투자 활동은 위축할 것으로 보인다.
베어링PEA가 지난달 지분 54%를 인수하기 위해 본계약(SPA)를 체결한 PI첨단소재의 주가는 계약일 이후 현재까지 33% 이상 하락했다. 7일 종가 기준 PI첨단소재의 주가는 3만3900원. 베어링PEA가 지불한 주당 8만300원과 단순 비교하면 60%가량 하락했다. 매각 절차가 진행중이던 지난 4~5월 당시만 해도 증시가 이 정도로 휘청일 거란 시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무산된 '엔켐'도 마찬가지 사례이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엔켐은 4월 운용사 수십 곳에 1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 이후 유진프라이빗에쿼티를 비롯한 다수의 PEF 운용사를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 후속 투자 유치를 진행했으나 결국 성사하지 못했다.
최초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RCPS의 주당 발행가는 8만4500원이었는데 추가 협상 도중에 주가는 4만원대로 급락했다. 첫 유상증자 결정 시점과 비교하면 주가 하락폭은 최대 약 55%이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엔켐의 3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여러 FI가 관심을 보였지만 먼저 들어간 운용사들이 반토막 나는 걸 보면서 후속 투자유치 규모가 줄어들었는게 결국 자연스레 거래가 무산됐다"라며 "최종적으로 주관사였던 대신증권만 300억원 정도 투자하는 걸로 마무리가 된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시장가격이 명확한 상장사는 물론 비상장사도 예외 없이 눈높이를 스스로 낮춰야 할 거란 지적도 나온다. 올해 조 단위 대어로 예상되던 기업들도 상장 시점을 조금씩 늦추고 있다.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전략적으로 후퇴하는 거란 분석이 많지만 향후 과거에 거론됐던 몸값을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내긴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다. 정책적으로 유동성 축소 기조가 장기화될 전망인 만큼 내년 또는 내후년으로 미루더라도 기존에 성장성에 초점이 맞추져 있던 프리미엄이 되살아나기 어렵단 분석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 IPO 담당 한 실무진은 "그나마 대기업 설비투자(CAPEX) 수혜주로 꼽히던 반도체·배터리 소부장 기업도 증설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데, 여전히 과거 몸값에 대한 기대감을 꺾지 않는 기업도 있다"라며 "일부 기업들의 경우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면 하반기에 투자금을 소진해 자금난이 본격화하면 결국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게 되는 사례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미소진투자자금(드라이파우더)이 넉넉한 FI들의 경우 서둘러 투자에 나설 유인은 크지 않다. 국내 증시의 바닥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고, 경기에 후행하는 대체투자 자산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기존의 자금으로 운용이 가능한 투자자의 입장에선 기업들의 자금난이 본격화하는 시점까진 활발한 투자활동을 이어가진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하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거래종결이 2주 밀리면 인수금융 이자가 50bp(1bp=0.01%) 늘어난다는 말도 있지만, 6개월 밀리면 반 값 밸류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며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진 FI들이 소극적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