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원자재 압박 치솟는데…재차 안보동맹 강조한 꼴
중·러 시장 견제 위한 미국 제조업 부활 동참 '압박'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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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LG화학을 방문해 한미 공급망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겉으로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LG그룹의 위상이 부각되는 모양새지만 부담감이 상당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까지 국내 기업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미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안보동맹을 위한 '프렌드쇼어링'이 사실상 무조건 우리 땅에 투자하란 으름장에 가깝다는 평까지 나온다.
19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LG사이언스파크에 있는 LG화학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방문해 "미국은 한국과 같은 동맹과의 협업으로 공급망을 관리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라며 "LG그룹의 미국 현지 투자 덕에 이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혼자서 중국과 러시아가 무너뜨린 기존 질서를 회복하기 힘드니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민간 기업이 열심히 협조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도 2025년까지 미국 현지 배터리 공급망 강화를 위해 110억달러(원화 약 14조45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 다시금 발표했다.
LG그룹이 미국 제조업의 부족한 고리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옐런 장관이 LG화학을 방문한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날 발표한 연설 내용을 두고선 걱정스럽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기업 조달 담당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기업은 공통적으로 유럽과 동남아시아, 미국 현지 증설 계획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현재 시장 환경에서 미국 현지 증설은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라며 "최근 LG엔솔이 미국 애리조나 투자 재검토에 들어간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재무장관이 모회사를 방문해 '공급망 문제는 경제·안보 동맹 이슈'라고 설파한 것이라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전했다.
투자 업계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온다. 금리와 물가가 덩달아 치솟으며 투자 집행을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에 미국이 동맹 논리를 들고 나왔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년 동안 풀어놓은 유동성이 회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 중국에서 사업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이만한 유동성이 미국과 동맹국 시장에서만 맴돌면 금리를 올려도 인플레가 잡힐까 싶다"라며 "그렇게 비용을 올려놓고선 인건비가 비싼 미국 땅에 설비를 깔아두라고 하는 건 사실상 수익성을 포기하고 동맹 논리를 따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LG그룹의 배터리 사업 역시 반도체 산업과 비슷한 수준의 청구서를 받아들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미 삼성전자도 반도체 사업에서 이와 같은 요구에 따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약 20조원을 투입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공장을 세우고 있다. 주 정부로부터 최대한 인센티브를 끌어낸 데다 현지 고객사 유치에 유리한 결정으로 풀이되지만 사업 자체로만 봤을 땐 지난 수십년 동안 구축된 국제 분업 구도를 거스른 결정에 가깝다.
배터리 역시 경영 환경과 무관하게 미국의 요구대로 계속해서 현지 증설을 이어가야 할 전망이다. 배터리 산업의 경우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그리 높지 않은 데다 고객사에 판가 인상분을 전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금리와 원자재 가격이 안정화할 때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국 현지 투자의 기대수익률도 바닥으로 수렴할 거란 우려가 상당하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 자국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는 걸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GM과 포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JV) 파트너십을 준 대가로 현지 증설에 나선 국내 배터리 기업에 돌아갈 수익성 확보에 제약이 걸릴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제시한 '프렌드쇼어링'이란 개념 자체가 "누구 편인지 선택하라"는 겁박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프렌드쇼어링은 동맹끼리 공급망을 재편하면 중국과 러시아 시장을 빼놓고도 기존 경제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LG그룹을 포함해 삼성, SK, 현대차그룹 등 주요 기업이 보유한 중국과 러시아 현지 생산공장 거취 문제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