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와 협상 길어지면 불리…눈높이 낮춰 협상 막바지
글로벌 FI 유치 조건 맞춰 국내 컨소 후속 투자 예정
프리 IPO 최대 5조원까지도 거론…투자 부담 커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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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가 곧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초 최대 40조원까지 거론되던 상장 전 기업 가치는 30조원 아래로 낮아질 거란 관측이다. 재무적 투자자(FI)와 협상을 시작한 지 수개월 만에 시장 분위기가 뒤바뀌며 시간을 끌수록 SK온이 더 많은 조건을 양보해야 해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이란 평이다.
SK온의 실무 담당자들은 잠재 투자자와의 협상을 위해 7월 중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투자 업계에선 글로벌 FI와의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내다보고 SK온이 어느 정도 조건에서 투자를 받아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온의 성장성에 크게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연초 형성된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FI는 SK온 측에 기업 가치를 낮추는 것은 물론 투자 원금을 보장하는 등 여러 안전장치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막판까지도 발행 신주를 보통주로 할 것이냐 우선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선 SK온이 최종적으로 약 25조원에서 30조원 사이 기업 가치를 바탕으로 신주를 발행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당초 SK그룹 내부에서 SK온의 배터리 사업 가치는 30조원에서 출발해 40조원까지 눈높이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협상 초기에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공모 시장에서 70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 후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했던 만큼 SK온도 기업공개(IPO) 시점엔 50조원에서 60조원 이상을 노려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높이가 상장 전 기업 가치 약 40조원에 보통주 10%를 발행해 4조원을 유치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고 SK온 내부적으로도 배터리 사업의 예상 손익분기점(BEP)이 늦춰지며 FI와의 눈높이 차이가 점점 더 커졌다. 결국 약속한 상반기를 넘기게 됐다.
SK온으로선 시간을 더 끌어봤자 유리할 것이 없다. 시장에선 기업 가치가 30조원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자금이 필요한 건 SK온이기 때문에 협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조건을 양보해야 한다. 거래가 틀어졌을 때 담당 실무진은 물론 SK온의 평판이 더 크게 훼손된다"라며 "시장 환경은 갈수록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바뀌는 반면 배터리 사업에 필요한 투자금은 계속 불어나는 구조라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면 SK온이 눈높이를 낮췄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상당수 FI가 기업 스스로 눈높이를 낮출 때까지 뜸을 들이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기업 자금난이 가중될 예정인 데다 금리가 오른 만큼 더 높은 기대 수익률을 이끌어낼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SK온 배터리 사업 성장성을 아무리 높게 평가하더라도 FI 역시 허투루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워진 환경이란 얘기다.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른 지금 달러 형태로 자금을 유치하면 상당한 환율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프리 IPO 협상 초기 약 11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300원 이상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FI로부터 약 20억달러(원화 약 2조6000억원)를 유치한다고 가정했을 때 SK온에 유입되는 현금은 종전에 비해 4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는 셈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워낙 규모가 큰 거래라 국내 금융권에서도 여전히 인수금융 주선 기회 등을 엿보고 있지만 연초 언급된 몸값이 비싸다는 시각은 확실히 늘었다"라며 "배터리 사업 수익성에 대한 기대치는 더 낮아졌고 SK온이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25조원 안팎이라면 나쁘지 않은 정도라 본다"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FI와의 투자 협상이 마무리되면 같은 조건으로 국내 운용사 컨소시엄으로부터 후속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 스텔라인베스트먼트가 국내 배정분의 3분의 1씩을 각각 책임지는 구조로 알려졌다. 다만 글로벌 FI와의 협상에서 SK온이 눈높이를 낮춘 만큼 국내 운용사에 배정될 몫은 기존에 알려진 최대 1조원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상장 전까지 필요한 자금 소요가 늘어난 만큼 전체 투자 유치 규모가 약 5조원까지 커질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현재 SK온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기업도 투자비 부담이 늘어나자 예상 설비투자(CAPEX) 금액을 늘리거나 투자 집행 시점을 조절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한창인 상황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K온도 처음부터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국내에서 이스트브릿지 컨소시엄을 초청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마지막 남은 배터리 투자처인 만큼 국민연금을 비롯한 굵직한 출자자(LP) 전반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FI에서 받아낸 조건 그대로 부족분을 컨소시엄으로부터 유치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