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실적에도 불구하고 발표 내내 하반기 걱정 가득
연말 갈수록 재고 늘어날 전망…투자 "하반기 봐서"
내년 투자 결정 앞당긴다지만 "이미 늦은 것 아니냐"
장비 확보 경쟁 치열해지는데…우려 계속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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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분기 최대 매출액을 기록한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 발표회(IR)는 하반기 전망에 대한 우울한 얘기들로 가득했다. 업황 전망은 여전히 수개월 단위로 죽 끓듯 변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도 하반기 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시인했다. 최대 관심사인 내년 설비투자(CAPEX) 계획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투자가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27일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회를 열고 2분기 매출액이 13조8110억원, 영업이익이 4조1926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은 시장 전망치보다 낮았지만 영업이익은 6%가량 높게 나왔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정 및 수율 개선으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와 우호적 환율 덕에 분기 최대 매출액과 30%대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물론 IR에 참석한 투자가 사이에서도 호실적이라는 평이 나왔다.
이날 진행된 IR에선 하반기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이에 대한 SK하이닉스의 대응 방안이 주로 다뤄졌다.
상반기 메모리 시장의 최대 화두는 PC와 스마트폰 등 세트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견조한 서버 수요의 지속 여부였다. 글로벌 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증설 등 투자 확대 의지가 예상돼 1분기에만 해도 서버 수요가 세트 수요 부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에 이어 하반기 공급사 전반의 재고가 증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 모두 지난 분기보다 재고가 각각 1주 물량 정도 증가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기존에 투자한 설비에서 생산하는 물량 자체를 줄일 수는 없다"라며 "하반기 시장 전체 빗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출하량 증가율)를 연초 예상보다 대폭 낮춰잡아야 하는 만큼 공급사는 물론 고객단에서도 재고가 기존 평균치보다 높아지는 경향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하반기 이후 내년까지 설비투자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두고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SK하이닉스 측이 먼저 내년 설비투자 계획을 상당폭 조정해야 할 것이란 의중을 내비쳤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차질로 인해 장비 주문에서 납품까지 소요 기간(리드타임)이 길어져 수요 변화에 따른 유연한 공급 대응이 어려워졌는데, 공급 능력에서 유연성이 핵심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3분기를 포함해 하반기 수요 전망치가 매일 같이 변화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몇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라 설명했다.
이미 하반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대응이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왔다. 이날 IR에 참석한 한 연구원은 "조기에 큰 폭으로 설비투자를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시장에선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내년에 감산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등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10월로 앞당긴 연말 경영계획을 더 당겨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내달 말이나 9월에 내년도 투자 계획을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고객사와 소통을 통해 3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 전망은 예측이 가능한 만큼 하반기 상황을 살펴 대응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가 설비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제한적이란 우려가 거듭됐다. 올해 진행된 투자의 절반 장비 구매가 아닌 부지 및 발전소 건립 등 인프라 부문에 투입된 데다 장비 확보 시점이 장기 경쟁력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인프라 투자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장비 확보를 위한 투자 비중이 여전히 높아 부담을 줄일 여지가 있고, 메모리는 물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도 현시점에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이 적절치 못하단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해명에도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에 대한 다양한 우려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공정 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도입 시점에 따라 중장기 경쟁력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만이 경쟁사보다 먼저 메모리 공정에 EUV 노광 장비를 도입해 관련 노하우를 축적 중이다. EUV와 같은 노광 장비 외 식각 공정 장비 등에서도 물량을 먼저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장비 확보에서 보수적 전략을 취하다가 시장 수요가 회복세를 보일 시점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호실적을 뒤로하고 시장 우려에 대한 대응 방안을 피력했지만 결국 하반기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래 투자에 대한 고민만 남게 됐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상승 출발했지만 실적 발표회가 진행되는 도중 하락세로 돌아서 장중 1.59% 하락했다.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의 재고가 연말까지 꾸준히 늘어날 것인 만큼 당분간 유의미한 매수세가 유입되기 어려울 거란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