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금리 상승·공제회 자금줄 말라 셀다운 제동
리츠 통한 비자발적 장기보유 전략으로 선회하기도
일각선 할인 통한 셀다운 나서지만…시장선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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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급격히 말라붙은 자본시장 속에서 증권사들이 부동산 관련 셀다운(Sell down·단기보유 후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주요 셀다운 원매자였던 연기금이나 공제회에서 더 이상 부동산 관련 물량을 받아줄 여력이 안 되는 탓이 가장 크다. 이에 증권사들은 리츠를 통한 장기보유 전략을 고려하거나, 수익을 포기한 채 할인된 가격에 셀다운을 하는 등 미매각 물량 처리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은 작년 말 투자한 미국 보스턴 콩그레스스퀘어 오피스 빌딩을 기반으로 리츠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들어 바뀐 기관투자자들의 보수적 투자 분위기와 그룹 차원의 새 리츠 설립 의지가 맞아떨어진 결정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셀다운이 어려워지는 현재 상황을 감안해 이보다는 리츠를 통한 보유로 향후 자산가치 상승을 꾀하는 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영증권이 올해 초 투자한 필라델피아 아마존 물류센터 역시 아직까지 셀다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증권사들은 실물자산 투자 이후 최대 6개월 안에 공제회 등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셀다운을 통한 자산 매각에 힘쓴다. 조달을 통한 투자를 진행하는 증권사 특성상 1년 이상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셀다운이 어려울 경우 통상 특수목적법인(SPC)를 주체로 어음발행을 실시하고 증권사가 지급보증을 내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자금조달 주체는 SPC이지만 증권사가 지급보증을 내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리스크를 지는 구조다.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평이다. 작년까지 물류센터 개발 ‘붐’이 이어지며 수도권 이외 지방까지 개발사업 범위가 넓어졌지만, 공사비용 상승 및 금용비용 증가 등의 영향으로 현재 개발이 중단된 곳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려운 저온물류센터의 경우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미매각 상태로 남아있는 물량이 많다는 전언이다.
업계에선 앞서 언급된 자산 자체의 투자 수익성은 나쁘지 않다는 평이 많다. 콩그레스스퀘어는 미국 보스턴 중심 지역에 위치한 데다 글로벌 광고회사 계열사 및 온라인 케이터링 플랫폼 기업 등 우량 임차인을 확보해뒀다. 필라델피아 물류센터 역시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의 거점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꼽혀왔다.
그럼에도 일부 증권사들이 셀다운에 어려움을 겪는 데는 최근 몇 개월 사이 급격히 변해버린 기관투자자들의 상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교직원공제회나 행정공제회, 각종 캐피탈 회사들은 그야말로 신규 출자는 ‘올스톱’ 되는 분위기다. 대출금리 상승에 따라 공제회 회원들의 내부 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경기침체 우려로 보수적 투자 분위기가 더해진 탓으로 분석된다. 또, 해외 부동산 리스크가 수면 위로 오르며 공제회와 증권사의 투자 성향 차이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기본적으로 증권사들은 수수료를 통한 수익을 추구하는 반면, 공제회는 장기보유 후 자산가치 상승으로 인한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두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당분간 신규 투자를 멈추고 그간 쌓아온 미매각 물량 소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손실을 보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마진’만 남기고 셀다운 할인 판매를 시도하거나, 아예 리츠를 통한 물건 편입으로 장기보유 등의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증권사들은 실물자산 투자 시 대개 2~3% 수준의 인수 수수료를 받고 투자를 진행하는데, 셀다운 진행 시 이미 받은 인수 수수료만큼은 할인해서 팔더라도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약 1000억원 규모의 총액인수를 했다고 가정하고 3%의 수수료를 받는다면 약 30억원을 증권사가 미리 가져가는 구조다. 만약 셀다운 물량이 약 300억원이 남았다면 10%는 할인하더라도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는 평이다. 최근 회사채 금리가 4% 이상을 넘어가는 사례들이 많은 만큼 굳이 리스크가 예상되는 부동산PF나 해외 부동산 물건 에쿼티(지분) 투자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IB업계 관계자는 “해외 물건들을 보면 생각보다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정도가 크지 않은 반면 금융비용은 올랐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라며 “다만 아직까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원하는 부동산 수익률은 과거 수준에 머물고 있어 눈높이가 맞춰질 때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