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FI 협상 지지부진…당초 눈높이 절반 수준으로
협상 이어가겠지만…글로벌 FI 전반 분위기 변화 부담
모회사 SK이노 지원 가능성 거론되지만 "시기상조"
국내 컨소시엄 투자금 2조 마련도 녹록지 않을 전망
대폭 양보에도 '불확실성' 가득…"사실상 실기한 셈"
-
SK온이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스텔라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최대 2조원 규모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글로벌 재무적 투자자(FI)의 국내 기업 투자 의지가 꺾인 데다 시장 자금 여력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터라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기업 가치는 당초 목표에 비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출자자(LP) 전반 사정이 녹록지 않아 컨소시엄이 2조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투자 유치가 더 늦어질 경우 SK온의 연내 손익분기점(BEP) 도달 목표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미 상반기부터 시간 끌면 불리해질 거란 시각이 형성됐던 만큼 SK온이 실기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K온이 2025년 이후 기업공개(IPO) 시점까지 확보해야 하는 자금은 약 4조원에서 최대 5조원이 거론된다. 공급망 혼란과 금리 인상, 원자재 등 물가 상승 압력을 고려하면 연초 계획보다 투자비 부담이 최대 20~3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글로벌 FI 협상 우선하다 '국내 투자자'로 선회
SK온은 원래 글로벌 FI와 우선 협상을 마무리하고 국내에서 후속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 자연히 글로벌 FI와 협상을 마칠 때까지 국내 컨소시엄이 결과를 기다리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달 SK온 내 담당 실무진이 미국 출장을 다녀올 때만 해도 최대한 조건을 양보해 이달 중 결론이 날 거란 기대감이 전해졌다.
그러나 글로벌 FI의 국내 투자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렸다. 글로벌 PEF 시장 전반이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불안정 문제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기사 : 금리 부담, 수장 교체...어수선한 글로벌 PE, 한국 투자도 '신중 모드'
SK그룹과 거래가 잦던 KKR을 포함해 최근 최고경영자(CEO)가 중도 이탈한 칼라일그룹 등 글로벌 PEF 전반이 국내 투자에 신중 모드로 돌아선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국내에선 수개월 전부터 주요 출자자(LP)들이 지갑을 닫고 운용사(GP) 전반이 개점휴업을 선언한 실정이다.
약속한 상반기를 훌쩍 넘겨 3분기 중턱을 지나는 현재 국내 컨소시엄이 더 기다리기도 어려워졌다. 컨소시엄 내 각사 자금 운용 계획 등을 고려하면 연내 투자를 마치기 위해 지금쯤은 구체적인 조건이 나왔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국내 컨소시엄 측에서 SK온에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컨소시엄을 통해 SK온 투자를 계획하던 LP들도 입장은 마찬가지였던 상황이다. 오는 9월은 물론 4분기 중에도 50bp(1bp=0.01%) 이상 금리 인상이 예고된다. 투자 시점이 늦어질수록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SK온이 글로벌 FI와 우선 협상한다는 전략을 접고 국내 투자자로 시선을 돌린 셈이다.
글로벌 FI 협상 지속…바뀐 분위기 '부담' 여전
SK온은 글로벌 FI와 협상을 계속 이어갈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선 분위기가 쉬이 바뀌기 어려울 거란 평이다. 냉정하게 보면 ▲마지막 남은 메이저 배터리 투자처라는 점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복귀했다는 점 등 조건을 제외했을 때 SK온은 국내 3사 중 유일하게 BEP를 넘기지 못한 적자 배터리 기업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SK온이 기업 가치 20조원대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긴 했는데, 20조원은 지난 2020년 초 LG화학이 아직 적자이던 배터리 사업의 외부 투자 유치를 검토할 때 밸류"라며 "SK온의 매출 성장성을 감안해도 분기 기준 매출액으로 비교하면 당시 LG화학 전지 사업부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게 보면 20조원 초반 밸류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SK온으로부터 더 좋은 투자 조건을 이끌어내는 협상이 글로벌 PEF가 국내 투자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문제로 확장한 측면도 있다. 특히 갑작스레 수장 공백이 발생한 칼라일그룹의 내부 잡음이 경쟁 PEF에 투자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아가 글로벌 FI가 동의한 조건으로 국내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 것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시중에선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직접 지원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당장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지난달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을 통해 200억달러(원화 약 2조6000억원) 규모 투자금을 확보했고 이번 MOU 체결 건까지 고려하면 지원 필요성을 고려하기 이른 시점"이라며 "SK이노베이션 역시 자체 신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인수합병(M&A)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국내 컨소시엄 투자금 2조 마련도 난항 전망
지금과 같은 시장 환경에서 국내 컨소시엄이 2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우려도 적지 않다. 3사가 보유 중인 블라인드 펀드 자금이 넉넉지 않아 대부분을 프로젝트 펀드로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텔라인베스트먼트의 경우 아직까지 블라인드 펀드를 설정한 적이 없는 신생 운용사이기도 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스트브릿지와 한투PE, 스텔라인베 등 3개 운용사가 각각 7000억원씩 마련해야 한다는 건데 전체 투자금이 2배로 불어날 동안 조달 난이도는 그 이상으로 올라간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본격적인 LP 영업에 나서기 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일 투자에 그만한 자금을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이 제한적이어서 LP가 겹치는 문제로 잡음이 불거질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인수금융 역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금리 부담도 상당할 전망이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현재 7~8%에 달하는 인수금융 금리는 연말께 9% 안팎까지 치솟을 수 있다. 국내 컨소시엄이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간 끌다 불리해진 프리 IPO…'실기했다' 평
결과적으로 SK온이 실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리 IPO 협상이 길어지면서 SK온이 조건을 대폭 양보했음에도 아직까지 확실하게 손에 쥔 자금은 없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가 더 늦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내 BEP 전환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미국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변수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장성을 기반으로 투자 유치에 나섰다가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수익성 등 가시적 성과를 요구받으며 꼬인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꼬이고 있다"라며 "흑자 전환을 위해 자금 부담을 덜려면 하루빨리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흑자 시점이 늦춰지면서 투자 유치 계획이 차질을 빚는 식이다. 시간을 끌면서 버티다가 불리한 조건만 남게 됐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