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불협화음 보인 주식과 채권...시장은 채권 우려대로
무역 적자에 유로화 약세로 강(强)달러 재림...증시 급락
연준 본격 긴축에 유럽 물가 이슈로 '금리 악재'도 여전
-
지난 두 달간 코스피지수는 7월 초 저점 대비 233포인트, 10.1% 상승했다. 지수 주도주인 반도체주의 업황침체 우려로 인해 지수 자체는 시원하게 오르지 못했지만, 차세대 성장주로 주목받은 2차전지ㆍ방산ㆍ원자력 등 이른바 '태조이방원' 주식은 평균 20% 넘는 상승을 보이며 시세를 분출했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저점에서 19%, 24% 상승했다. 고점 대비 하락폭을 절반 이상 되돌린 반등 랠리였다. 베드베스앤비욘드(BBBY) 같은 일부 테마주는 2주새 주가가 500%나 치솟기도 했다. 증시에 '약세장이 끝난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주식을 사야 하나?'라는 고민이 팽배할 정도였다.
채권시장의 분위기는 다소 달랐다. 단기물인 미국 국채 2년물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과 매파적 발언, 6월 양적긴축(QT)의 본격 시행 등으로 3.35%까지 급등했다. 반면 장기물인 미국 국채 10년물은 2.7%선에서 움직이며 장단기 금리차 역전폭이 50bp(0.5%포인트)까지 커졌다. 이는 역사적 수준의 역전폭이었다. 장단기 금리차 역전은 금융경색과 경기침체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주식시장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었다.
엇갈리는 주식과 채권의 행보를 보며 최일선의 운용역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며 혼란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8월 하순에 접어들며 시장은 결국 채권시장의 우려대로 움직이는 모양세다.
글로벌 증시는 8월 미국 연준의 잭슨홀 미팅과 9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를 의식하며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9월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25~50bp만 올릴거라던 낙관론은 어느새 다시 75bp인상론으로 대체된 상황이다.
미국 증시가 강한 조정을 받으며 국내 증시도 분위기가 변했다. 코스피지수는 16일 이후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상승분의 3분의 1을 토해냈다. 연기금과 사모펀드가 주도적으로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매수 주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배경으로는 환율 이슈가 첫 손에 꼽힌다. 원달러환율은 23일 장 초반 1345원까지 치솟았다. 이미 전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30원을 돌파하며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원달러환율이 1300원대 초반에서 안정됐던 지난 두 달간 증시 상승세를 이끌었던 외국인 자금도 환율 전 고점 돌파 이후 멈칫하는 분위기다.
환율 급등 배경으로는 국내 무역 적자와 유로화 약세로 인한 달러 강세가 꼽힌다. 관세청에 따르면 8월 한 달(1~20일)동안 국내 무역 수지 적자폭이 102억달러(약 14조원)에 달했다. 연간 누적으로는 254억달러(약 34조원)으로, 현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500억달러(약 67조원)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무역적자로 달러 유출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주택 가격 급락으로 경기 전반이 흔들리고 있는 중국이 사실상 다시 경기 부양과 돈풀기 수순에 들어간 것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위안화-원화는 달러화와 대비해 비슷하게 움직이는 경향성을 띈다.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유로화 급락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22일 유로화는 다시 달러당 0.9997유로로 떨어지며 패리티(1=1)관계가 붕괴됐다. 글로벌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강세를 뜻하는 달러인덱스는 다시 올해 최고점인 108을 돌파했다. 유럽은 에너지 위기로 산업 역량마저 무너지며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올해 3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준까지 다시 치솟았고, 독일 전력 도매 선도가격은 사상 최고치인 1메가와트시(Mwh)당 600유로에 육박하고 있다. 두 달만에 3배, 2년 전 대비 10배 올랐다.
어느 정도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기미를 보인 미국과 달리, 유럽은 아직도 에너지 수급 문제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독일 7월 생산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37.2% 폭등해 1949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생산자물자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전이되고, 독일은 유럽연합 내 핵심 제조국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매크로 담당 연구원은 "지금도 러시아는 수시로 밸브를 잠그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유럽의 에너지 대안은 미국 천연가스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미국 천연가스 가격마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한데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당분간 유럽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어렵고, 강달러 현상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거둬들이는 '척'만 했던 글로벌 유동성이 9월부터는 정말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미국 연준은 6월부터 매월 475억달러(약 63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서 흡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연준은 지난 두 달 반동안 국채와 모기지채권(MBS)을 총 1188억달러 줄여야했지만 실제론 386억달러어치만 줄이는 데 그쳤다.
9월부터는 유동성 흡수 한도가 매월 475억달러에서 950억달러로 두 배 늘어난다. 여기에 미국 재무부가 3분기 중 계정 지출을 줄이며 연준의 계획이 실제로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유동성을 흡수할 가능성이 커질 거란 전망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지금까지는 말만 QT였지 실제로 미국의 유동성은 거의 줄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베어마켓랠리때 국내 증시에 대한 미국계 자금의 순유입이 있을 수 있었다"며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본격적으로 돈줄이 마르기 시작하면 국내 증시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도 다시 슬금슬금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수준까지 올라왔다. 2.5%대까지 떨어졌던 미국 국채 10년물은 어느새 '리스크 오프'(Risk off;위험자산 비선호) 기준선으로 통하는 3%대로 회복됐다.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국내 국채 10년물 역시 최근 일주일간 7%가량 오르며 3.4%선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의 금리 하락은 '물가 안정'과 '경기 침체'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전자로 해석하면 증시에 호재, 후자로 해석하면 악재다. 증권가에서는 최근의 제반 사항을 고려하면 증시엔 금리 하락이 호재라는 입장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변수인 현 시점에선 증시와 금리가 1970년대 미국처럼 정확한 역(逆)의 관계를 그리는 까닭이다.
이은택 KB증권 전략담당 연구원은 "앞으로 증시는 연준의 긴축ㆍ유럽의 물가 등 금리 상승을 압박할 이슈 몇 가지를 넘어야 한다"며 "미국의 끈적한 물가(경직성 물가지표)가 지속 상승하는 등 장기적으로 물가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이 단기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