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악재에도…어차피 할 美투자 '가속화' 기대감
현지 배터리 수요도 확대 전망…배터리社도 분주
IRA 이후 배터리·전기차 경쟁 지형도 변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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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국내 대기업 전기차·배터리 사업이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빠진 현대자동차그룹의 현지 투자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배터리 3사와의 파트너십은 물론 전체 시장 경쟁구도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2일 현대차 주가는 개장과 함께 전일보다 3.7% 이상 급등하며 8개월여 만에 20만원선을 돌파했다. 지난주 미국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매파적 발언 이후 증시 전반이 부진한 데다 IRA 보조금 문제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사업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한 것을 고려하면 크게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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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악재 속에서 현대차 주가가 선방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 매수세 덕으로 풀이된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오후장 들어 기관 매도세로 오전 상승폭 대부분을 반납했지만 외인 순매수 행렬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도 외인들이 IRA 보조금 제외 등 악재에도 외인이 현대차를 계속해서 담는 이유에 대한 여러 분석이 거론된다.
8월 판매 실적에서 꾸준한 생산 회복이 관찰된다는 점과 환율 효과로 인한 3분기 실적 기대감 등이 거론되지만 IRA로 현대차그룹의 북미 투자가 앞당겨질 거란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는 평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IRA 이전에도 보조금 차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상돼 있었고, 이번 보조금 명단 제외로 어차피 해야 할 미국 투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거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라며 "테슬라 외 전통적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브랜드 가치에서 현대차그룹이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IRA로 인해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략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는 얘기인데, 현대차는 물론 국내 배터리 3사 역시도 덩달아 분주해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IRA 승인 직후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 완공 시기를 6개월 이상 앞당기는 안과 함께 기존 앨라배마 내연기관차 공장의 라인 전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조금 지급 기준을 최대한 앞당겨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체 보조금(인센티브) 확대 등으로 현지 친환경차 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다. 아직 전기차 시장이 경쟁 초입에 있는 만큼 당장의 수익성보단 점유율 상승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투자를 앞당기는 만큼 현지 배터리 확보 계획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현지 배터리 파트너로는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이 거론된다. 당초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발표될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현지 배터리 수요가 기존 계획보다 늘어날 예정인 만큼 파트너에게 돌아갈 수주물량도 대폭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SK온과 LG엔솔 중 현대차 북미 파트너십을 거머쥐는 쪽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일감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북미 현지 완성차 업체와의 배터리셀 JV의 경우 배터리 업체 수익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형태로 계약이 맺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드라이브에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진 IRA로 인한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기차 판매 차질 우려가 크지만, 이를 기점으로 배터리 업체를 포함한 전체 배터리 전기차 시장 지형이 바뀌게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올 상반기를 거치며 시장에선 전기차 시대 들어 내연기관차 시절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위상이 무색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늘었다. IRA가 현대차그룹에 악재인 것은 맞지만 보조금 차별 시기를 잘 버텨내기만 하면 전통 완성차 업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완성차 담당 한 연구원은 "IRA 등 지속되는 변수로 수년 내에 전기차 경쟁에서 탈락하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북미 시장 내 GM과 포드, 폭스바겐 등 비(非) 테슬라 진영에선 현대차그룹 전기차 브랜드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 중"이라며 "북미 시장이 국내 배터리 3사의 독무대인 것은 맞지만 전기차 브랜드 경쟁력에 따라 희비가 갈릴 가능성도 그만큼 더 높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