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중심 하반기 대규모 공채…"시기 공교롭다"
당국 실질적 압박 속 사실상 '자진상납' 나섰단 평
스타트업 구조조정…디지털 인재 '큰장 섰다' 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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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공시 등 줄세우기를 통해 금융사를 압박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전격적으로 하반기 공개채용에 나서며 공교롭다는 반응이 나온다. 직접적인 요구가 없었다지만 사실상 자진상납 격으로 채용에 나선 것 아니겠냐는 평이다.
다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차원에서도 스타트업 구조조정이 가시화한 가운데 디지털 인재 확보 차원에서 시기적·전략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지난 5일 신한은행은 채용 공고와 함께 약 400명 규모의 신입·경력사원 채용 절차를 시작했다. 일반직 신입행원 외에도 뱅킹서비스·신기술·모바일·정보 보호 분야 등에서 수시 채용을 통해 세 자릿수 인재를 확보해 하반기에만 총 700명을 뽑을 예정이다. 이어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등도 9월 중 채용 계획을 밝히며 갑작스레 은행권 취업문이 열렸다는 분위기다.
지난 달 은행·보험·카드 등 58개 금융사가 공동으로 3년 만에 대면 채용박람회를 열었던 만큼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공채 계획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점 축소·수시채용 트렌드 확산과 임금피크제로 인한 노사갈등 심화로 신규 채용 감소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온 대규모 공채라 배경을 두고 이목이 집중된다.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금리 인하권 수용률 등 줄세우기가 한창일 때 채용문을 바짝 열어젖힌 터라 시기적으로 공교롭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예대금리차 공시 등 줄세우기로 인한 부담은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7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잔액기준 예대금리차는 2bp(1bp=0.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예대금리차가 21bp 축소한 만큼 시차를 두고 잔액 에대금리차도 계속해서 줄어들 예정인 데다, 예대금리차 공시로 인한 효과까지 가세하며 은행 순이자마진(NIM) 상승폭 둔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 등 형태로 대응할 필요성은 높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을 포함한 금융업계뿐 아니라 사기업 전반이 새 정부 출범 당시 '일자리 확충'에 관심이 컸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금융당국 위상이 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이 솔선수범해서 채용문을 여는 방식으로 자진상납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금융업계 외 일반 대기업 그룹사에서도 하반기 공채 계획을 구체화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하반기 공채에 돌입하며 경쟁 그룹사의 채용 계획에도 영향을 줄 거란 관측이 전해진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8.15 광복절특사로 사면·복권된 이후 첫 공채 일정이다.
채용에 나선 은행업계에 나쁘지만은 않은 결정이란 평가도 나온다.
현재 투자업계에선 정보통신(IT)·테크 분야 스타트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주된 화두다. 지난 수년 동안 빅테크의 금융 부문 진출로 부담을 겪어왔던 금융사 입장에선 때맞춰 관련 인재를 확보하기에 적합한 큰 장이 섰다는 분석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 금리가 치솟는 상황에서 투자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건 라이선스 기반으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SI)"라며 "지금이야말로 매년 수조원대 이익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중은행들이 핀테크 기업과 경쟁력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채용에 나서기 적기인 것도 사실'라고 설명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채용 계획을 내놓은 신한은행뿐 아니라 하반기 대규모 공채를 진행하는 대다수 은행들이 일반 은행원 외 ITC·소프트웨어(SW) 관련 인력 확보에 방점을 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당국 차원에서 은행·보험업계의 혁신을 권장하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혁신을 위한 군불을 떼는 것도 이번 채용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시중은행을 비롯한 전통 금융업권과 국내 핀테크 업체와의 기술 경쟁력 격차가 좁혀지게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 단순히 정부·당국 눈치보기 차원을 넘어 금융업 전반의 시중 인재 확보 전략이 가시화할 거란 전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 컨설팅 업체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 전반이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은행업 라이선스가 더 뚜렷하게 부각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라며 "그간 구호에 그쳤던 디지털 전환 경쟁력에서 격차를 좁히기 위한 우호적 조건이 마련된 상황이기 때문에 관련 인재 확보전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