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기대감도…조선 경기 변동성·경기 침체는 부담
그룹 부담 안고 인수한 대우조선…수출 등 확장 성과 필요
DK 태양광 성과엔 물음표…경영 역량 확실히 입증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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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에 방위산업(방산)이라는 날개를 달아줬다. 나라의 고민을 해결해준 만큼 앞으로 방산 부문이 정부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김 부회장이 몇 년에 걸쳐 방산 사업을 키워놓으면 그룹 총수로서의 당위성을 스스로 입증하게 된다.
한화그룹은 방산 부문만이 아닌 대우조선 전체를 인수했다. 사업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상선 부문을 당분간 안고 가야 한다. 한화가 방위 사업에서 성과를 낼수록 경쟁사들의 견제가 심해질 수 있다. 조선 경기 주기가 하락할 때 버틸 수 있는 체력과 무기 해외 판매망을 갖추냐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인수 득실이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은 2조원을 들여 대우조선을 인수하기로 함으로써 2008년의 아쉬움을 달래게 됐다. 경쟁자를 찾고 있지만 한화그룹 대신 덜컥 인수하게 될 위험을 감수할 곳이 있을지 미지수다. 한화그룹은 실사 결과 일정 규모 이상의 부실이 추가로 발견될 경우 발을 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우조선은 이르면 내년 초 한화 계열로 편입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기존에 전투기 엔진과 각종 시스템, 자주포와 장갑차 등 지상 무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잠수함과 군함 등 해상 쪽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대우조선을 인수해 육·해·공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한화는 여러 계열사가 나눠서 맡던 방산 부문을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우조선이 더해지면 김 부회장의 ‘차기 총수’로서 행보도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대우조선을 인수함으로써 종합 방산 기업으로서 육·해·공 ‘패키지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됐다. 조선업 호황 사이클에 막 진입했고 당분간 국책은행의 금융지원도 이어진다. 산업은행이 여전히 2대주주로 한화와 한 배를 타고 있다. 한화로선 국방 예산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내수보다는 해외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 주요 무기 체계를 수출하기 위해선 정부의 승인과 협조가 있어야 하고, 무기 수요처에 대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도 필요하다. 정부 입장에선 큰 고민을 덜어준 한화그룹에 대한 시각이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한화가 한국항공우주(KAI)의 새주인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2008년보다 방산에 힘을 싣고 있는 지금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며 “특A급 무기까지는 아니라도 기술 보안 수준이 낮은 무기를 수출하는 데는 정부의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화가 원하지 않았던 상선 부문에서도 돈을 벌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과 노동조합으로 줄줄 새던 자금만 관리해도 대우조선해양의 사정이 한결 나아질 것이란 예상이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을 살펴봤던 자문사들은 한화의 성취감보다 정부의 후련함이 더 클 것이라고 본다. 그만큼 대우조선해양이 오랜 기간 망가져왔고, 조선업 경기 하강기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던 2008년의 금융위기 초입과 겹쳐 보인다는 시각도 많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10조원이 그룹 전체를 짓누르게 될 수도 있다. 한화는 기존의 LNG발전 사업과 대우조선의 LNG 시추용 플랜트 및 LNG 선박을 연계하지만 곧바로 직접적인 시너지 효과로 이어지는 영역은 아니란 평가도 있다. 방산에 꼭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점차 줄여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방산 자체 사업의 육성이다. 기존엔 유도 무기, 레이더 등을 다른 함정에 공급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자체적으로 만든 선박에 얹을 수 있다. 정부는 수조원 규모의 한국형 항공모함, 차세대구축함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가 여기서 실적을 쌓으면 해외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의 크기가 달라진다. 방산 성적이 좋으면 조선 경기 변동의 여파도 최소화할 수 있다.
방위산업의 성과가 미치지 못하면 그룹의 미래 청사진이 흐트러지게 된다. 과거엔 대우조선해양이 국방부 수의계약 방식으로 잠수함 사업을 따냈었지만, 1998년 현대중공업이 이의를 제기한 후 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됐다. 잠수함 건조 실적은 여전히 제일 많지만 최근 수상함 분야에서는 현대중공업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넘지 못하면 대우조선해양 인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민간 주도의 산업 재편을 기대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M&A는 해외 기업결합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자율적으로 사업 비중을 줄여가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현대중공업은 LNG운반선 등에 집중하고, 한화는 방산 부문을 점차 늘려가는 식이다.
한화가 정말로 KAI를 인수하게 된다면 시너지 효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모든 방위산업을 한화가 다 가져가게 된다는 반발과 견제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KAI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여럿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뜻을 보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KAI 최대주주(지분율 26.41%)인 수출입은행은 정상 기업이고 이제 성과가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대우조선 때와는 달리 ‘정상 매각’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2010년 그룹에 들어온 후 한화솔라원, 한화큐셀 등 태양광 사업체를 거쳤다. 이후 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육성한 공로로 초고속 승진행보를 밟았다. 지금도 한화솔루션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이룬 성과인데, 중간중간 의문부호가 많이 붙었다. 덩치는 키워놨지만 실적은 흑자와 적자를 오가며 들쑥날쑥했기 때문이다.
김동관 부회장 입장에선 대우조선해양과 방위산업의 성공 트로피가 더 중요하다. 이미 사실상의 총수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영 능력을 보다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룹 차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깔아준 판에서의 성과가 신통치 않으면 시장에선 의문섞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