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R 정상화 맞춰 고유동성 자산 선제 확보 시급한 탓
일부 상품 조달비용보다 높은 수익률 보장 등 '기현상'
유동성 관리 비용도 치솟아…수익성 부담 확대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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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유동성 관리에 나서며 앞다퉈 4%대 특판예금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의 단계적 정상화에 따라 고유동성 자산을 선제 확보하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기업 대출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금리 인상 불안이 계속될 예정인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은행의 유동성 확보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5일 SH수협은행은 주요 예금상품 기본금리를 인상하면서 개인고객 대상 특판 상품인 'Sh플러스알파예금'의 1년 만기 금리를 4.35%로 올렸다. 같은 날 케이뱅크 역시 주력 수신상품인 파킹통장 '플러스박스'의 금리를 연 2.5%로 이전 대비 0.2%포인트 올렸다. 올해 네 번째 인상이다.
이미 지난달 4대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4%를 넘긴 상황에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저축은행을 제치고 연 4.5% 고금리 예금상품을 내놨다.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수신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이 LCR 규제 비율을 단계적으로 올려가는 만큼 은행 역시 고유동성 자산(HQLA)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평이다.
LCR은 향후 30일간 예상되는 순현금 유출액 대비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로 은행의 건전성 관리를 위한 규제 중 하나다. 은행은 갑작스러운 현금 유출에 대비해 국채, 우량 회사채, 예금 등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을 규제 비율에 맞춰 확보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하반기 들어 팬데믹 이후 85%로 낮춘 LCR 비율을 내년 상반기 100%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은행 대부분이 현 단계인 LCR 비율 92.5% 이상을 충족하지만 내년 하반기 전에 100%를 맞추려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 6월을 전후해 은행이 채권 시장에 자주 모습을 비춘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예수금을 늘리는 정도로는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 시장성 자금을 통해 고유동성 자산의 포트폴리오 관리도 병행해야 하는 만큼 은행채 발행과 특판예금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난 2017년 바젤 III 시행 이후 LCR 규제를 도입하면서 은행이 예수금 확보와 함께 대거 은행채 발행에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라며 "현재 시중은행이 저축은행보다 더 고금리의 특판예금을 쏟아내는 것도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리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빨리 완충 구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은행의 유동성 확보전이 치열해지며 시장에서 여러 기현상도 언급된다. 저축은행은 이미 특판상품에서도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시중은행이 내놓은 일부 상품의 1년 만기 상품이 2년 만기 상품 금리를 뛰어넘는가 하면 만기가 같은 은행채 평균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최근 내놓은 1년 만기 연 4.5% 정기예금 상품은 4일 기준 AAA등급 1년물 은행채 발행 금리(4.34%)보다 높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이후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를 시행하며 불거진 은행의 실적 부담이 가중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전해진다. 대출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조달금리 이상의 특판 상품을 쏟아내는 것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운용 업계 한 관계자는 "예대금리차 공시로 은행을 줄 세우면서 수익성 우려가 커졌는데, 조달 비용이 점점 불어나는 상황에서 이자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만 늘어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의 유동성 관리 비용도 지난달 들어 대폭 불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은행은 특판예금 외에도 은행채를 찍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고유동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1년물 기준 AAA 등급 은행채 스프레드(은행채와 국채 금리 차)는 8월 말 48bp(1bp=0.01%)에서 9월 말 102bp까지 성큼 뛰었다.
9월 은행채 순발행액이 7조4600억원으로 늘어나며 발행 금리가 치솟은 탓으로 풀이된다.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가 20조원 규모에 달하는 데다 은행 대출창구를 찾는 기업의 자금 수요가 겹치며 은행의 유동성 관리 부담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은행 기업 대출 담당 한 관계자는 "은행채를 찍어서 국채를 살 때 역마진 규모를 일종의 유동성 관리 비용으로 부담하고 있는데 이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LCR 규제 비율 정상화와 함께 기업 대출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유동성 확보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