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금리 취약한 부동산 금융 시장부터 경색 시작돼
"연준, 부정확한 지표 보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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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10일 27개국 EU 대사 모인 연례 컨퍼런스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주도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 모두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세계 경기 침체를 야기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지난 4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고집할 경우 개발도상국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이를 '경솔한 도박'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2. 최근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허심탄회'라는 단어가 이슈가 됐다. 한 국내 대형 건설사가 보증하는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차환 발행하는 과정에서, 발행을 담당한 한 채권 브로커가 '원하시는 금리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부탁드린다'라고 안내한 것이다. 원하는 대로 금리를 줄테니 제발 투자해달라는 간곡한 메시지였다. 금리 급등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 부실 우려 등으로 인해 돈줄이 가장 먼저 말라붙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의 한 단면이다.
미국은 계속 고삐를 죄고, 다른 나라는 울먹이며 허겁지겁 미국을 뒤따르는 형국이다. 연준은 이미 3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고, 올해 남은 두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한국은행 역시 물가 안정 및 외화유출 방지를 위해 두 차례 연속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불과 14개월 사이에 기준금리가 2.5%포인트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 외 다른 국가의 '시스템 붕괴 리스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 급락과 국채 금리 발작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과열됐던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며 경기침체기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지목받았던 부동산 PF 시장부터 죽어가고 있다. 국내 증시 역시 '시스템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하며 하락은 크고 반등은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미국의 신규고용은 26만3000명으로 시장 예상치(25만5000명)을 상회했다. 실업률 역시 3.5%로 예상치(3.7%)보다 훨씬 경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해당 숫자가 발표되자 미국 국채 금리는 폭등했고, 증시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날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장중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4.3%를 넘어섰고, 나스닥은 3.8% 급락했다.
견조한 경제 지표가 시장 발작의 원인이 된 셈이다. 연준은 올해 하반기 들어 통화정책의 핵심 지표로 핵심 소비자물가지수(코어 CPI)와 고용 상황을 보고 있다. 해당 수치는 연준이 3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밟았음에도 경기가 견조하다는 증거였고, 이는 반대로 지금까지의 '폭력적인 금리 인상'을 지속할 근거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고용 상황은 급여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4일 미국 9월 CPI 상승률이 시장 전망 대비 높게 나오며 다시금 시장금리는 급등했고, 주가는 추락했다. CPI 발표 이후 미 국채 선물시장에는 연준이 11월 FOMC에서 100bp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가격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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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연준은 사람들을 해고해야 인플레가 잡힌다고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데, 고용은 명목지표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으로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300bp 올리고도 고용은 못 잡았는데, 이를 알지 못한다면 초가삼간(국채시장)을 다 태운 뒤에야 벼룩(고용)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정확한 지표를 보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CPI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주비가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데, 부동산 프롭테크 기업 질로우가 제공하는 실거래 가격은 이미 상승세가 꺾였고 주택 가격도 하락 전환했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주비 지수를 보고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데 대한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한국은행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2연속 빅스텝을 결정한 배경으로 5%대 중반에 달하는 소비자물가와 더불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상단을 3.5%로 언급하고,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1%포인트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건 미국 기준금리가 연말 4.5~4.75% 수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번 일련의 인상 흐름 속에서 '세계의 중앙은행은 결국 한 곳(미국 연준)'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금리 인상이 초래할 결과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 인상될 시 국내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3조3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했다. 지난 14개월간 기준금리가 2.5%포인트 인상됐으므로, 국내 전체 이자 부담이 이전 대비 33조원 늘어난 셈이다.
이자 부담과 경기 둔화는 기업 실적 우려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실적 조정 추세가 가파르다. 이는 증시 반등 기대감을 낮추고 있다. 9월 말 243원이었던 코스피 상장사 주당순이익 전망치는 불과 2주 만인 이달 14일 기준 233.8원으로 3.8% 하향 조정됐다. 코스피 2200선 기준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은 9.47배에 이른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7월 초 2300선에서 PER이 8.5배였는데, 지수는 100포인트 가까이 낮아졌음에도 이익 전망치가 낮아지며 PER이 1배 가까이 오른 것"이라며 "반기 반등 목표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금리 급변에 따른 채권시장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산금채 3년물이 동일등급 민평금리 대비 44bp(0.44%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발행되는등 채권 발행시장은 아비규환의 상태다. 궁지에 몰린 기업들은 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기업의 은행 원화대출 잔액은 9월말 기준 115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9개월 연속 상승했으며, 특히 최근 한달 증가량은 9조4000억원으로 2009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저축은행 기업 대출 잔액도 최근 사상 처음으로 70조원을 돌파했다.
금리 인상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부동산 금융 시장에는 균열이 벌써 시작됐다. 건설사 보증 유동화채권이 좀처럼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이 큰 중소형 증권사 및 건설사의 부도설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한 중견 건설사는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해 6개월물에 연 30%의 금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폭력적일 정도의 기준금리 인상에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까지 겹치며 금융 경색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고 있는 것 같다"며 "덩치가 큰 은행은 이미 내부 단속에 들어갔지만, 자본 여력이 크지 않은 일부 중소형 증권사나 캐피탈사는 이번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