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원가성 수신 '바닥' 향하고 조달금리 치솟는데
올해 금고 유치 성과 따라 직·간접 이익 확대 전망
-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은행의 지자체 금고 유치 경쟁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대외적인 홍보 효과를 제외하면 실익이 불투명한 사업이란 시각이 많았지만,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 국면에서 수익성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효자로 발돋움했다는 평이다.
지난달 27일 연간 16조원 규모의 서울시 구(區) 금고 유치 경쟁이 마무리됐다. 은행은 각 지자체 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면 4년 동안 유휴 자금의 보관과 세입금 수납·이체 및 세출금 지출 등 업무를 맡게 된다. 구 금고를 운영하지 않는 하나은행을 제외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3사는 2026년까지 각각 서울시 내 14개, 6개, 5개 자치구의 금고를 관리하게 된다.
그간 시장에선 은행의 금고 유치 경쟁을 두고 홍보 효과를 제외하면 역마진 사업이라 실익이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기관 운영 자금이 자산으로 잡히지 않아 건전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익 사업으로 연결 짓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지난 2018년 신한은행이 연간 48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금고 운영권을 따낸 것이다. 원래 1915년 경성부 금고 당시부터 104년간 우리은행의 독점 사업이었지만 신한은행이 선정된 이래 지난 4월 수성전까지 마친 상황이다.
당시 신한은행은 우리은행과의 경쟁이 과열되며 금고 운영을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비용으로 필요 이상 규모를 제시했다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과태료를 부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을 두고 은행끼리 출혈 경쟁을 벌인다는 인식이 굳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며 유동성이 줄어들고 조달 금리가 전방위로 치솟자 위상이 달라졌다.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과 같은 저원가성 수신은 이미 2020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4년내 최저치 아래로 내려갔다. 올 들어선 특히 7월부터 전 은행권의 유동성 예금 감소세가 시작됐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에만 은행권 전체에서 유동성 예금 감속폭이 5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까지 예금 금리 인상 등이 예정된 만큼 유동성 감소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은행이 은행채 발행과 함께 수신 금리 경쟁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에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기준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만큼 고유동성 자산을 마련해야 하니 은행채를 찍어 국채를 사들이는 한편 연 금리 5% 이상의 특판예금을 쏟아냈다.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자연감소하는 과정에서 저원가성 예금의 이탈도 부추기게 된 것이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약 641조8091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대비 29조원가량(약 4.3%)이 줄어들었는데, 같은 기간 은행 예금에는 47조원이 몰려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찌감치 지자체 금고를 두둑이 유치한 은행의 경우 내년 1분기부터 유동성 예금이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절적으로 정부·지자체의 자금 집행이 예상된 만큼 금고 유치전 등 기관 영업 결과에 따라 성과가 드러날 거란 얘기다.
올해 서울시 금고와 인천시 금고를 모두 수성한 신한은행은 당장 3분기 실적에서 금고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의 3분기 누적 순이익은 2조5925억원으로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의 누적 순이익 2조5506억원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48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금고가 일정 기여를 한 만큼 각 은행의 기관 영업 전략이 성패를 갈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조달 금리가 치솟는 상황에서 예상되는 직·간접적인 이득이 갈수록 늘어날 거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기관과 지자체의 금고 운영이 은행 수익을 직접적으로 보장하게 되면서 경쟁이 과열되거나 이에 은행의 사회적 책임 형태 등으로 추가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금고 유치전 등에서 성과를 거둔 은행권에 3분기 호실적을 축하하면 웃음기를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하다"라며 "최근 국감장에 출석한 행장들이 목표 수익률을 사실상 포기하란 식의 무리한 요구에도 고개를 숙이고 돌아왔듯이 은행이 공공연히 득을 보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