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독자신용등급 추가 상향 발목 잡은 가계부채
입력 2022.11.11 15:22
    피치 "국내 은행, 글로벌 독자신용등급 추가 상향 쉽지 않아"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한 신용위험 증가
    저비용성 자금 조달 경쟁이 심화
    대손비용과 조달 비용 부담 역시 증가
    • 국내 은행의 글로벌 독자신용등급이 추가로 올라가긴 어려워 보인다는 전망이 나왔다. 긴축 통화정책으로 신용위험 증가, 저비용성 자금조달 경쟁이 심화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산건전성과 실적 관련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Fitch Ratings)는 11일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2022 Fitch on Korea' 컨퍼런스에서 한국 은행 섹터를 점검했다.

      한국 은행업의 영업환경은 'a+'로 싱가포르(aa), 호주(aa-)에 이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 중 세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높은 가계부채비율(2022년 상반기 기준 GDP 대비 104.6%)을 한국 은행업의 영업환경 상향 조정을 발목 잡는 요인으로 꼽았다.

      금융기관을 담당하고 있는 장혜규 피치 상무는 "급격한 금리인상 및 경제전망 둔화와 함께 가계부채로 인한 취약성이 은행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여신 수요가 감소돼 2022년 9월말 누적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은 0.1% 감소했다. 피치는 긴축 통화정책 환경에서 가계의 이자부담이 늘어나고 추가 대출 여력이 줄어들어 현재 0.2%의 낮은 대출 연체율이 향후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이 6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하락은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3년간 누적 26% 상승한 후 2022년 8~10월에는 고점 대비 1% 하락했다.

      장 상무는 "특히 지난 수년간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에 최근 시작된 하락세는 향후 몇 년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 호황 때 대출을 받아 매수가 많았던 지역 또는 대규모 공급이 예정된 지역에서는 가격 하락폭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조정이 예상되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추가로 완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은 완화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가계부채를 더 악화킬 수 있다는 게 피치의 입장이다.

      그나마 국내 은행의 건전한 여신 심사 관행은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장 상무는 "대부분의 대출이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우량 차주에게 제공됐기 때문에 연체율 상승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며 "은행권의 평균 LTV는 40% 미만으로 주택담보대출의 회수 가능성이 매우 높고 고도화된 신용정보 인프라를 활용해 차주의 대출 상환 능력을 더 철저하고 시의적절하게 평가하고 모니터링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몇 년간 상향 조정 추세를 보여왔던 국내 은행 섹터의 독자 신용등급(Viablility Rating) 역시 정체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병두 피치 이사는 "대출 자산 성장의 둔화는 은행의 영업이익의 성장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 상승과 경제 둔화에서 비롯된 신용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은행들은 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기준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높은 금리와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대출 수요가 감소하면서 은행의 가계 여신 잔액 또한 감소할 것으로 봤다. 은행권 대출 성장률은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9%를 기록하고, 2022년엔 6~7%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2023년엔 이보다 훨씬 낮은 3%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단기적으로는 제반 비용 상승 등으로 실적 성장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은행 대차대조표 상에서 변동금리 대출과 저비용성 예금의 높은 비중으로 인해 초기에는 순이자마진 증가가 실적 향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한 신용 위험이 증가하고 저비용성 자금 조달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손비용과 조달 비용 부담 역시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22년 상반기말 기준 부실여신(NPL) 비율은 0.4%로 낮은 수준이지만 앞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최 이사는 "부채가 많은 가계, 코로나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을 받는 소규모 수출 기업, 글로벌 수요에 의존하는 제조업 중소기업 등 취약 차주들은 긴축 통화정책 환경에서 차환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는 전체 NPL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요 은행의 경우 예금 이자의 재설정 주기가 대출 이자 재설정 주기보다 평균적으로 2개월 정도 더 길어 금리 상승기에 조달 비용 상승은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다. 또 자금이 고금리 정기예금으로 몰리면서 저비용성 예금에 대한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2022년 10월 이후 은행채 스프레드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조달 비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은행의 건전한 리스크 프로필과 우량한 재무 프로필을 감안하면 독자 신용등급이 단기간 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최병두 이사는 "지난 10년간 은행들이 꾸준히 담보대출과 소액대출에 집중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부실대출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적어졌고 대손비용 부담도 코로나 지원 대출과 관련한 추가 적립된 대손충당금 등이 있어 추가 부담이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