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는 옛말…줄줄이 물러나는 CEO에 금감원 눈치보는 금융사들
입력 2022.11.14 07:00
    에셋플러스·메리츠·BNK금융 대표 사임 다수
    금감원 내 검사국 분위기 달라진 점도 한몫
    제보자 중심 및 빠른 검사 진행 속도가 핵심
    연말 금융사 인사 시즌 맞으며 긴장감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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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금감원) 내 검사국의 분위기 변화로 금융시장 안팎에서 당국의 눈치를 보는 금융사들이 늘고 있다. 각종 혼란스러운 금융사건이 터지고 있는 가운데 연말 인사까지 겹친 만큼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부임 이후 검사 과정의 속도와 강도가 달라져 금융사와 금감원 안팎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 취임 이후 약 5개월이 지난 가운데 그간 금감원 검사국에서 진행돼온 각종 건들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금감원은 김지완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계열사인 BNK자산운용, BNK캐피탈에 대해 진행한 특별조사를 마무리 지었다. 아직 공식적인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중징계 방침을 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감독당국 관계자는 “지난주 특수은행검사국, 여신금융검사국, 자산운용검사국 등이 BNK금융 관련 특별조사를 마무리한 만큼 공식적인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김 전 회장이 자진사임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김 전 회장 비리와 관련한) 제보 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과 관련한 의혹을 검사한 바 있다. 이후 존 리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을 사임했고, 강 회장은 올해 상반기까지 진행된 금감원 정기검사 과정에서 자기매매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9월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중징계 결정을 받았다. 

      이 원장의 부임 이후 그간 금감원 내 검사국에서 진행돼온 각종 건들이 ‘속전속결’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대부분의 검사들이 이 원장 부임 이전부터 시작된 건들이기는 하지만 검사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예전보다 시일이 앞당겨졌다는 의견이다. 이번 검사로 현재 메리츠자산운용은 매각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역시 지난 7월 23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원장이 취임 직후 강조해온 금융사 경영진의 도덕적 잣대에 대한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8월 이 원장은 자산운용사 경영진의 부적절한 사익 추구 의혹과 관련 “고객의 투자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자산운용업은 신뢰가 근간”이라며 “경영진 스스로 과거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조는 금감원 내 검사국 지위를 둘러싼 분위기로도 감지된다는 의견이다. 과거보다 검사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을 뿐 아니라 제보자 민원에 따른 검사 진행이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전언이다. 

      과거에는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위)와 사전교류 등으로 문책결과를 쉬쉬하거나 제재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의 업무 스타일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검사 특유의 속도감, 직설적, 상명하복 등의 분위기가 녹아들어 있다는 후문이다. 

      다만 금감원 내 급작스런 분위기 변화로 다소 혼란스러워 하는 실무진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테면 금융위와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금감원이 전면에 나서 자칫 ‘총대’를 메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내부 제보가 있었더라도 금감원 내 검사 진행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바로바로 결과물이 보이고 있다”라며 “실제 금융회사 검사에 나갔을 때도 검찰 조서 형식을 따라가기도 하는 등 업무 문서 작성 방식부터 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 3월 회장 임기가 만료되는 신한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은 물론, 다른 금융지주들도 연말 인사를 앞두고 당국의 기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위원회로부터 금감원의 문책경고 제재 원안을 의결 받은 데 따라 금융지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손 회장의 연임가도가 금융당국에 의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최근 BNK금융지주 회장이 금감원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 자진사임을 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라며 “정권 교체와 맞물린 금융당국의 분위기 변화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고위 임원진들도 셈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 역시 벌써부터 메리츠운용과 에셋플러스운용에 이은 다음 검사대상이 어디일지를 두고 추측이 난무하다는 전언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이 ‘타겟’을 정해두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고 확실한 제보가 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