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에 힘 받는 가상자산 규제 필요성…'발 빼던' 금융당국도 긴장
입력 2022.11.16 07:00
    여야 가상자산 제정법 동시 발의…입법 속도 의지
    '법안 미비' 이유로 손놨던 금감원, 전수조사 나서
    투자업계 "코인시장, 앞으로는 규제와의 싸움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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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세계 3대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 여파로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인 투자자 이슈가 불거지면서 정치권에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관련 법안 부재’를 이유로 가상자산 규제 문제와 거리를 뒀던 금융감독당국이 본격적으로 고삐 조이기에 나설지 관심이 모인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는 다음주께 가상자산 업권법을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 본격적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FTX 파산사태로 개인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여야가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전날 국민의힘과 정부는 당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주최로 가장자산 거래소 대표와 블록체인·디지털자산 전문가 등을 초청해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 윤창현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위 위원장은 가상자산 관련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장치를 빠른 시일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 디지털자산기본법(제정법) 입법 논의 과정에서 단계적 규제와 진흥방안을 마련하자는 의견이다. 

      현재 디지털자산법과 관련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을,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이달 10일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날 간담회에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들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입법 논의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필요한 최소 규제를 먼저 마련한 뒤 점진적, 단계적으로 규제체계를 마련하는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테라‧루나사태, 셀시우스 파산, FTX 사태까지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생해 신뢰가 무너진 한 해였다"며 "규제 없는 시장은 사상누각이므로 규제 마련이 조속이 이뤄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감독 당국은 ‘관련 법안 부재’라는 이유로 가상자산 시장 감독에서 발을 빼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에 앞서 가상자산 투자와 관련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던 것에 비해 입법이 더디게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회계 기준 마련, 투자자 보호, 거래소 발행 규정 등 세부적인 논의도 앞서나가지 못했다.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금융당국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우선 유관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도 금융당국은 본격적인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에 나서지 않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금감원은 가상화폐 시장 규제 관련해서는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며 “금감원 입장에선 관련 법이 미비한 상태다보니 나서서 감독하고 관리할 단계가 아니라고 보고, 코인거래소 공시나 위믹스 코인 사태 등 관련 일들을 거래소가 알아서 조치하도록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가상자산 시장 규제 및 질서 마련을 두고 누구도 먼저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5조3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커졌지만, 아직 가상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장부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회계적 판단조차 명확하지 않다. 가치 평가도 기준이 거래소마다 제각각이라 잠재위험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올해 6월 금감원은 가상화폐업계 관계자들과 ‘가상자산리스크 협의회’를 구성해 준법감시와 관련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논의해왔다. 해당 TF에서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통해 ‘대안’들을 마련했고 현재 금융위에 보고된 상태라고 전해진다. 다만 회계 업계에서는 회계 기준 마련에 앞서 ‘법안이 먼저’ 라는 입장이다. 

      FTX 파산신청에 따른 충격파가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미치면서 금융당국도 더 이상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내 FTX 이용자는 1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개인 투자자들은 FTX의 회생 여부와 상관없이 무담보 채권자로 분류돼 한 푼도 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상 화폐와 가상 화폐 거래소는 일반 금융기관과 달리 파산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14일 금융당국은 국내 유통중인 '자기발행 코인'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선다고 알려졌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자기발행 코인들의 현황과 거래소별 리스크 관리 대책을 점검해 '제2의 FTX사태'를 막겠다는 취지다.

      규제 강화 기조가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FTX 붕괴를 계기로 진정한 ‘암호화폐 윈터’가 올 것으로 보고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앞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규제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관측하며 손을 떼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FTX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더이상 암호화폐를 ‘디지털 금’ 등과 같은 잠재적 투자 자산으로 보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FTX 파산 여파가 가상자산 규제 강화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와 규제 당국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전체적인 암호화폐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FTX 파산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선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젠 '생존'을 두고 크립토 시장의 ‘옥석가리기’가 시작된 것”이라며 “VC(벤처캐피탈) 등 투자자들 사이에선 다신 암호화폐를 보지 않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사건의 파장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