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조만간 시중은행 유동성 상황 점검
은행간 사모채 발행 위한 제반작업 준비 한창
유동성 상황 두고 시장과 당국 의견차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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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이 ‘유동성 확보’ 이슈를 두고 물밑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당국은 은행간 사모채 발행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시중은행들의 보이지 않는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국으로서는 당장 은행들의 유동성 관리보다는 전반적인 시장 안정에 방점을 두는 모양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만간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과 만남을 가지고 은행채 발행 등과 관련한 사항 및 유동성 상황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최근 은행간 사모채 인수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그간 금융당국은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은행채 발행을 자제할 것을 주문해왔다. 하지만 은행들이 수신금리 경쟁 제한과 더불어 은행채 발행의 길까지 막히자 유동성 위기 상황을 우려하면서 대안으로 ‘사모채’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선 사모채 발행은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보니 내부규정이나 절차를 새롭게 정해야 되는 사항이 많다”라며 “한국은행의 역할도 필요한 만큼 금융당국도 검토하고 조율해야할 사항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권을 비롯한 업계에서는 사모채 발행이 ‘미봉책’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은행들끼리 긴급자금을 공급하는 방안은 실질적인 외부 자금 조달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일종의 ‘돌려막기’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당국에서는 인수해둔 타은행의 은행채를 한국은행(한은)이 RP(환매조건부채권)로 받아줄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지만, 무한정 규모를 늘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은행권에서는 이전 관행대로 공모채 발행과 관련한 규제가 풀릴 것을 기대해온 의견도 있었다. 일부 은행들은 사모채 발행을 우선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내년 초에는 공모채 발행의 길도 열릴 것으로 예견했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수신금리 경쟁을 자제하라는 상황에서 은행채 발행까지 길이 막힌다면 유동성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간 긴급자금 지원의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외부 자금 조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일단은 진행해보고 그래도 추가로 자금이 필요하다면 공모채 발행도 곧 허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한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재와 같이 저원가성 예금이 많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정기예금이든 대출을 줄이든 방법을 찾아야 할텐데, 은행간 사모채 인수와 같은 방안으로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은이 이를 RP로 매입해준다는 것은 (은행에) 외부자금을 조달해주는 방안이 되겠지만 한은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금융당국에서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사모채 위주의 자금조달을 먼저 실행해본 뒤에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에서 사모채 외에 공모채 발행을 다시 검토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덜컥 공모채 발행의 길을 터줬다가 자칫 우량채권의 대거 출현으로 시장 자금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현 유동성 상황을 둘러싼 판단을 두고도 당국과 시장의 괴리가 다소 큰 상황이다.
은행들의 불안감과 달리 금융당국에서는 은행권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될지 아직까지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지난 3분기 기준 주요 은행들은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비율은 우선 맞춘 상태인 데다, 저원가성 예금이 빠져나가는 만큼 저축성 예금이 들어오고 있는 등 낙관적인 시그널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시장안정을 위해 주문해뒀던 과제들이 우선적으로 시행됐는지 여부도 중요한 요소다. 시중은행은 보험사 RP(환매조건부채권) 자금 공급,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 출자, 기업대출 등 전반적인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한 역할을 당부받은 바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실질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지는 따져봐야 한다”라며 “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 공급을 충분히 했는지 여부도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과제다. 전반적인 자금 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