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보험사 유동성 위기 국면에 자금조달 조치 시동
실질적인 유동성 확보에 도움될지 미지수…장기 리스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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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이 단기 유동성 관리에 한창이다. 금융당국의 발빠른 조치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다만 자본시장 ‘큰손’인 보험사의 유동성 관리에도 아직까지 시장 플레이어들의 불안감은 높다는 지적이다.
보험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등의 길이 열렸지만 단기 유동성 관리를 위한 미봉책인 데다, 퇴직연금 '머니무브' 역시 규모를 예측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퇴직연금 차입계정 한도를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현재는 ‘계정 자산의 10분의 1’로 한정하고 있지만 이를 완화해 은행이나 다른 금융사에서 빌릴 수 있는 자금 규모를 잠시 늘려두겠다는 것이다. 최근 금리 경쟁으로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대비해 보험사의 유동성 확충 기반을 마련해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금융위원회(금융위)는 대규모 보험계약 해약, 퇴직연금 자금이탈 등에 대비해 보험사가 금융기관에 RP 매도를 시행하는 행위가 회사의 유동성 유지 목적에 부합한다는 유권해석도 내놓았다. 기존에는 파생상품 일일정산에 따른 손실금액을 납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던 RP 매도가 보험사의 유동성 관리에 사용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에 최근 보험사들의 RP 매도 규모가 크게 늘었다. 9월 9조4000억원, 10월 10조4000억원, 11월 12조7000억원 수준으로 작년 월 평균 5조6000억원에서 대략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매도한 RP 종류도 익일물(1일)보다 기일물(2일 이상) 증가가 눈에 띈다. 즉, 기존에는 파생상품 정산 등 초단기 위주의 RP 매도가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좀 더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를 위해 조달기간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보험사의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RP 매도는 금융사가 보유한 국채나 회사채 등을 담보로 잡고 단기 자금을 융통하는 방안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의 장기적인 유동성 리스크에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RP 특성상 짧게는 1일, 길게는 3개월간의 기간을 두고 발행되는 초단기 자금조달 수단인 만큼 본질적인 유동성 확보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흥국생명이 발행하는 RP를 관계사인 태광그룹 계열사를 통해 마련하는 4000억원 규모의 자금으로 상환하기로 한 점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당장의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보험사들의 자금조달 창구를 열어준 것”이라며 “다만 무한정 RP 매도를 통해서 자금조달을 메울 수는 없는 만큼 결국에는 장기적인 자금확충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운용사나 증권사 및 은행 투자은행(IB) 부문의 ‘큰손’ 역할을 하던 보험사의 위상이 이전보다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필요한 자금규모가 큰 대신 리스크가 비교적 낮은 인프라 금융이나 채권 운용시장에서는 여전히 보험사의 자금 여력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보험사들이 막강한 자본시장 플레이어 역할을 해줬지만 이제는 옛말”이라며 “인프라 금융 부문도 원래는 보험사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장이었는데 자금경색도 심한 데다가 채권금리도 높아진 상황에서 굳이 위험성이 커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자금을 태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험사들이 RP를 비롯한 채권 매도 규모가 늘어난 만큼 전반적인 채권시장 교란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11월 보험사의 채권 순매도액은 약 3조4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조원 넘게 증가했다. 단기 RP 매도까지 늘어날 경우 단기자금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자칫 전반적인 금리 상승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보험사 유동성 진단과 관련해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연말에 얼마나 일어날지 등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RP 매도가 늘어나게 되면 금리 상승 등 여러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겠지만 여러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리스크가 생기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