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證 맹추격에도 KB證 1위 수성…막판까지 팽팽
발행 급감·'주관사 끼워넣기'에 점유율 평준화
내년 시장 전망 엇갈리지만 "오히려 기회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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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회사채 발행 주관사들에 힘든 한 해였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감은 급감했고, 대규모 미매각 물량을 떠안는 부담까지 더해졌다. 사실상 채권자본시장(DCM) 주관 순위 경쟁이 무의미했던 가운데 KB증권이 NH투자증권의 맹추격에도 막판 저력을 보이며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인베스트조선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일반 회사채 주관 금액은 40조1010억원으로 지난해(55조1850억원)에 비해 급감했다. 전체 DCM 주관 금액도 지난해 70조원 규모에서 올해는 54조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이 활황이었던 점도 있지만, 2019년의 66조원, 2020년의 68조원과 비교해도 급감한 수치다.
자연스레 주요 증권사들의 일감도 줄어들었다. KB증권은 지난해 총 270건을 주관했지만 올해는 158건에 그쳤다. NH투자증권도 지난해 226건에 비해 올해 140건으로 급감했다. 한국투자증권, SK증권,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도 건수가 현저히 줄었다.
어려운 시장 속 그나마 도전에 나선 우량 기업들이 대규모 미매각을 내면서 주관사들의 부담을 더했다. 특히 10월에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유례 없는 채권시장 경색이 나타나면서 투심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대기업 고객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관사들 입장에선 미매각이 예상되더라도 무리하게 발행에 나선 경우도 있다.
한번도 미매각이 없던 LG유플러스(AA)도 올해는 미매각을 내, 팔리지 않은 물량 500억원을 주관사가 떠안아야 했다. 발행을 맡은 5곳의 공동대표주관사, 2곳의 공동주관사가 앞서 미매각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평이었다. 2500억원의 대규모 미매각을 낸 한온시스템(AA)은 단독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미매각 물량 전량을 인수했다. 한화솔루션(AA-)도 1500억원 모집에 주문이 고작 130억원에 그쳤다.
한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기업금융 일감이 줄어들고 전반적으로 실적이 감소해 불편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다”며 “떠안은 미매각 회사채 물량 등을 해결하지 못한 곳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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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발행 자체가 줄어들면서 증권사별 DCM 주관 성적도 차이가 미미했다. 올해 DCM 주관 순위 1위인 KB증권은 총 7조9553억원을 주관했는데, 2위인 NH투자증권이 7조5336억원을 주관해 차이가 크지 않다. 지난해에는 1위인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주관금액 차이가 약 1조7000억원 규모였다.
NH투자증권이 KT, 현대백화점에 이어 3분기 SK E&S 등을 수임하며 연말 '1위 탈환'의 기대감이 오르기도 했었다. 이에 KB증권은 11월 말과 이달 초 하이투자증권과 SK㈜, SK텔레콤의 회사채 발행을 단독 주관하며 성적을 올렸다. 미매각 걱정에 주관사 선정 당시만 해도 SK㈜와 SK텔레콤 발행 주관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지만, 수요예측에 나선 시기에 마침 정부가 채안펀드를 가동하고 은행채 발행 제동에 나서는 등 시장 여건이 나아지며 발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KB증권은 ECM(IPO 등)·DCM(회사채 발행 등)·M&A(인수금융 등)에서 모두 1위를 달성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목표로 내건 바 있다. KB증권은 올해 IPO 시장이 얼어붙기 전 최대어인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주관하며 ECM 1위는 사실상 이미 선점해 둔 상태였다. 상반기 기준 M&A 인수금융 주관 성적도 2위를 기록했다. 막판 뒤집기가 없었다면 ‘안전한’ DCM에서 이변이 발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NH투자증권은 올해 SK쉴더스, 원스토어 등이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카카오모빌리티와 LG CNS의 주관사단엔 포함되지 못하는 등 ECM 부진이 예상되자 DCM 쪽에 힘을 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들어 특히 회사채 영업 등 기업금융 부문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였다. 지난 5월 DCM 역량을 키우기 위해 커버리지를 담당하는 IB사업부 내 본부를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에 나선 바 있다.
이전에도 NH투자증권이 연말이 되면 적극 세일즈에 나서는 등 DCM 1위를 탈환하려는 노력을 보여왔지만, 올해는 유독 발행 자체가 적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발행사들의 ‘주관사 나누기’로 시장 점유율도 평준화됐다. 시장이 어렵다보니 불안한 기업들이 다수의 주관사들을 선정했다. 시장이 좋을 때는 상위 주관사 단독으로만 선정했다면 올해는 5곳까지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금융지주에서의 도움(?)을 고려해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들을 끼워 넣곤 했다.
내년 시장 전망은 여전히 엇갈리는 가운데 이미 금리가 많이 올라와 특정 크레딧 위험이 발행하지 않는다면 투심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올해 못했던 발행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차환 수요까지 더해져 기업들의 발행 수요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회사채 투자 수요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해외 대체투자 등 다른 투자처가 상황이 좋지 않아 마땅한 대안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최근 들어 주요 회사채 투자자인 보험사들 상황이 좀 더 나아지고 있고 연금이나 은행들도 조금씩 투자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다수의 대기업들이 내년 초 발행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어려운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