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부진 여파에 내년에도 경기 침체 가능성
증권사 IPO ‘개점휴업’…다가올 규제변화도 혼란
-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좀처럼 IPO(기업공개) 시장의 반등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증권사 관련 부서도 당분간 ‘개점휴업’ 신세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그동안 관심을 모았던 굵직한 상장 기업들도 사실상 상장을 미루거나 추가 투자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부터 예고된 IPO 관련 규제 변화에 따라 증권사들의 혼란스러움도 더욱 가중될 예정이다.
인베스트조선의 집계에 따르면, 4분기 신규 상장(재상장, 이전 상장 제외) 건수 가운데 코스피 기업은 바이오 콘텐츠 및 동물 진단기업 바이오노트 단 하나에 그쳤다. 대부분 소규모의 코스닥 기업 위주였고, 그나마 12월에는 스팩(SPAC) 제외 코스닥 공모가 전무했다. 발행금액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윤성에프앤씨도 모집규모가 977억원대로 4분기 기준 공모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 상장사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바이오노트도 원래 공모 규모가 2000억원을 넘는 중형급 거래로 계획됐지만, 공모가를 크게 낮추며 930억원대로 줄였다.
3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제조회사 수산인더스트리나 모빌리티 플랫폼 쏘카 등 ‘빅딜’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4분기 들어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12월은 원래 IPO 시장의 '빅 시즌'이지만, 일반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공모를 진행한 바이오노트조차 흥행에 참패했다. 바이오노트는 최종 공모가를 9000원으로 정했는데, 이는 회사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 최하단(1만8000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공모물량도 20%가량 줄이며 가까스로 상장 작업을 마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장을 준비하던 회사들은 쉽사리 기업공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미 상장 철회나 연기를 결정한 곳도 많다. 내년을 기점으로 상장에 나서고 있던 기업들도 속속 ‘철회설’에 휩싸이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독서플랫폼 밀리의서재 등은 일찌감치 상장을 철회했고 벤처투자사 LB인베스트먼트나 새벽배송 플랫폼 컬리 역시 상장 일정이 연기된 상태다. 컬리는 시장에서 거론되는 몸값이 직전 투자단가보다 크게 낮아지자 투자사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가 상장 연기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 역시 코인시장 급락 등으로 상장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바이오나 플랫폼 등 주식시장 활황기에 높은 멀티플을 인정받았던 기업들은 당분간 상장은 물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고, '오늘회'를 운영하던 오늘식탁 역시 자금난으로 사실상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한 벤처투자사(VC) 대표는 “벤처투자 열풍이 불던 시기 플랫폼회사들이 너도 나도 몸값을 올려받고, 여기에 크고 작은 VC 회사들이 서로 합심해 밸류를 높여준 데 따른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당분간 상장은 물론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벤처시장에도 자정작용이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던 증권사 ECM 부서들도 당분간은 코스닥 위주의 상장을 준비해야할 전망이다. 올해 상장을 철회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CJ올리브영 등 굵직한 상장 건들이 대기하고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상장 움직임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증권사들도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를 견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 증권사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증권사 IPO 팀에서 신규 인력 채용도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인력 유출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VC(벤처투자) 시장이 급격히 말라붙은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는 IPO 관련 규제 변화 역시 실무진들로서는 걱정거리다. 최근 금융당국은 IPO 수요예측 기간을 기존 2일에서 7일 내외로 연장하고 허수성 청약에 대한 기관의 책임을 강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다. IPO 과정 전반에 걸쳐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당장 상장시장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규제변화까지 맞닥뜨려 혼란스러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증권사 IB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 기간에 기관들끼리 서로 눈치보며 분위기를 살피다가 마지막 날 마감 직전에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수요예측 시장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