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보단 '위기 대응'에 무게추 이동…ESG 고민은 사치 돼
회복 시점에 대해선 의견 분분…"지난해 수준으로 회복하긴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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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통제가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에 직면한 기업들의 관심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서 '생존'으로 옮겨가면서 ESG 채권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된 까닭에 다수의 기업들이 관련 신사업을 꾸릴 자금을 마련하려 ESG 채권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ESG에 대한 투자업계의 관심이 한 풀 꺾이고 회의론이 대두되면서 ESG 채권 시장의 회복 시점은 요원해졌다.
불과 1년 만에 국내 ESG 채권 시장이 황폐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채권시장 내 ESG 채권 비중은 전년동기 대비 10%포인트가량 줄어든 12.5%를 기록했다. 일반 기업이 발행한 ESG 채권의 비중도 지난해 1분기 18%에서 올해 3분기 1.6%로 줄었다. 일반 기업이 ESG 채권 시장을 찾지 않으면서, 공기업과 은행 위주의 ESG 채권 시장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다.
규모뿐만 아니라 질(質)적으로도 퇴보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설파되면서 다수의 기업에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고 이를 위한 자금은 ESG 시장을 통해 조달됐다. 주로 건설사, 석유화학사들이 친환경 중심 경영을 내걸고 녹색채권을 발행해왔는데, 이를 두고 투자업계에서는 "국내 ESG 채권 시장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녹색채권의 발행량은 크게 줄었다. 반대급부로, 사회적채권의 비중이 비대해진 상황이다. ESG 채권은 녹색채권, 지속가능채권, 사회적채권 등으로 구성되는데, 시장에서 기대됐던 ESG 채권 시장의 다양성 증가는 현실화하지 못한 모습이다.
한국신용평가 측은 금번 신용 리스크(위험) 관련 세미나를 통해 "2023년 ESG 채권 시장은 다소 퇴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며 "지난해 급성장을 이뤘음에도 아직까지 ESG가 국내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습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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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에 직면한 기업들이 '위기 대응'으로 눈을 돌린 것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잇딴 금리 인상과 유동성 경색에 주식 뿐만 아니라 채권 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은 녹록지 않아졌다. 이에 더해 신용 위험까지 불거지자 각 기업들은 신용등급 관리를 위해 주력 사업의 현금창출력을 기반으로 재무건전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상대적으로 2020년부터 강조한 신사업 투자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렸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물론 ESG 채권 발행 자금의 목적이 한정된 까닭에, 일부 기업들이 올해도 '회사채보다는 금리 수준이 낮다'라는 판단 하에 발행을 단행한 사례가 없지 않지만 그 규모가 적은 편이긴 하다"라면서 "경기가 안 좋고 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애를 먹으면서 ESG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ESG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된 점도 거론된다. 올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수급난이 가중되면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된 바 있다. ESG가치 설득에 활용됐던 '대의'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진 데 따른 반발 움직임도 일부 포착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한 주(州)를 중심으로 ESG 투자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미 플로리다주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 맡긴 약 20억달러의 주정부 자금을 회수키로 결정했다. 수익률 제고보단 ESG 투자에 집중하는 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는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인 '이니셔티브'(NZAM) 탈퇴를 감행했다. NZAM은 자산운용사들의 ESG 투자 기조를 잡는 역할을 하는 협의체로 평가받고 있다.
ESG 채권시장의 회복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단기간내 ESG 채권시장의 완연한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신용도가 우량한 공사채나 주택저당증권(MBS)마저도 시장 여건의 악화로 발행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채권시장의 경색이 심각한 수준이다. 금리 인상 기조 둔화, 금리변동성 축소 등이 선행돼야만 ESG 채권시장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누린 호황을 다시 기대하긴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이뤄진 ESG채권 시장의 성장세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그 기저효과로 올해의 발행규모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국내외 연기금이나 주요 투자자들은 지난해 ES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련 기업들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ESG 채권에 투자하겠다는 주요 투자자들의 수요가 상당한 편이었던 것으로 회상된다"라며 "그런데 올해는 주요 투자자들의 수요가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지난해 거론한 중요성에 대한 이들의 판단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